재계 "노조 힘 비대화"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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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여년 만의 산별교섭은 노사 모두에게 엄청난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노동계는 산별 교섭 체제의 확산을 기대하고 있고, 경영계는 노조의 힘이 과도하게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노조의 힘을 실어주려는 새 정부에도 큰 실험대가 될 수 있다.

◆왜 산별 체제로 갔나=노조가 아닌 사용자 측이 요구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동안 경영계는 "산별 교섭은 절대 안된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었다.

하지만 금속 업종 기업주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동안 개별사업장에서 벌이던 노사 협상에는 어김없이 금속노조가 개입했다.

각 사업장의 노조가 금속노조 산하 지부 또는 지회 형태(산별 노조)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산중공업 사태 때도 금속노조가 전면에 나서 파업과 분규를 주도했었다.

모 기업체 임원은 "개별 업체가 단위 사업장의 노조를 상대하지 못하고 금속노조에 대응하면서 힘이 노조로 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상급 단체 노조를 상대할 때는 힘을 모아 공동으로 대응해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 산별 교섭을 먼저 제안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파장=총파업이 사실상 합법화된다는 부담이 크다. 산별 교섭이 결렬되면 금속노조가 공동 조정신청을 거쳐 전사업장이 동시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 지난해 노사분규의 55.6%가 산별 노조에 의해 발생한 점을 고려할 때 파업이 잦을 수도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전무는 "인사권 등 기업이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을 두고 맞서면 총파업으로 쉽게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노사가 합의만 하면 정부 정책과 관계없이 전향적으로 노동 현안을 처리할 수 있다. 지난해 금융노조가 사측과 주5일 근무제에 합의해 은행권이 곧바로 토요 휴무에 들어간 것이 좋은 예다.

이번에 산별 교섭에 합의한 금속업종 사업장 가운데 상당수가 중소기업인 점을 감안하면 합의 여하에 따라서는 대기업 중심으로 실시되고 있는 주5일 근무제가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노사 모두 홍역 치를 듯=노사 모두 속사정이 복잡해 산별 교섭이 일사불란하게 확산되기는 어렵다.

금속노조의 한 간부는 "산별 교섭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돼 있다고 반발하는 단위 노조들이 제법 있다"며 "노조 내부의 조정 여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노동연구원이 최근 전국 노조위원장 5백8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2%만이 산별 교섭에 찬성했다.

따라서 기업 규모에 따라 산별 교섭에서 이루어진 내용을 단위 노조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산별 교섭 뒤 다시 기업별 교섭을 벌여야 하는 이중 교섭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경영계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주5일 근무제에 합의해도 통일중공업 등 비교적 큰 사업장은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은 인력 충원이 불가피해 경영에 심각한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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