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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부럽잖은 흥행, 코믹 차별화 통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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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영화 ‘해적’의 천성일 작가는 “육아·패션·맛집 등 일상이 담긴 인터넷 게시판과 심리학 서적, 예능·개그 프로그램을 즐겨 보며 이야기의 소재를 찾는다”고 했다. [사진 김진솔(STUDIO 706)]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8월 6일 개봉, 이석훈 감독, 이하 ‘해적’)이 장기 흥행을 하고 있다.

 꾸준한 입소문에 힘입어 두 달째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며, 14일 현재 828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900만 관객을 넘어설 거란 전망도 나온다.

영화는 조선 건국초 고래가 삼켜버린 국새를 찾기 위해 해적과 산적, 건국세력이 서로 물고 물리는 추격전을 벌이는 내용이다. 국새를 고래가 삼켜버린다는 기상천외한 상상을 시나리오로 옮긴 이는 천성일(43) 작가다.

드라마 ‘추노’(2010, KBS2), 영화 ‘7급 공무원’(2009) 등으로 스타작가 반열에 오른 그는 “컴퓨터그래픽(CG)과 감독의 연출력을 믿고, 이야기를 뚝심으로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경기도 양평에서 자신의 감독 데뷔작 ‘서부전선’(가제)을 찍고 있는 그를 만났다.

 -흥행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장르의 힘이라 본다. ‘명량’ ‘군도:민란의 시대’ 등 다른 대작들에 비해 ‘해적’의 차별 포인트는 코믹한 해양 어드벤처라는 점이다. 이석훈 감독의 코미디 연출력을 믿었고,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난 기초공사만 했을 뿐, 감독이 골조를 세우고, 철봉 역의 유해진이 페인트칠을 해서 시나리오보다 훨씬 재미있게 살아난 장면들이 많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예전부터 고려 말 조선 초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경복궁의 이름이 중국 고전 『시경』의 경복(景福)이란 글자에서 따온 것이란 걸 알고 실망한 적이 있다. 조선 초 10년간 명나라로부터 국새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그걸 가족용 해양영화에 녹여넣고 싶었다.”

‘해적’의 주인공을 맡은 김남길(왼쪽)과 손예진.

 -시나리오를 처음 본 영화 관계자들의 반응은 어땠나.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였다. 가장 어려운 CG인 물과 불이 섞여 있고, 고래도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미련한 시나리오였다. 모험이었지만 우리의 CG 기술력을 믿고, 촬영 시스템을 CG 우선으로 맞췄다. 제작비에 대한 생각 없이 시나리오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힘을 준 대사가 있나.

 “영화 말미에 사정(김남길)이 이성계의 목에 칼을 겨누며 하는 대사 ‘내가 어느 나라 백성인지 대답해달라’에 남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경복궁이란 명칭의 유래, 명나라에서 건너온 국새 등은 그렇게 살지 못했던 역사의 증거물 아닌가. 그런 슬픈 역사 속 격변의 시기에 놓인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싶었다.”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

 “엄마 고래가 죽는 장면이다. 새끼를 남겨두고 죽어가는 엄마 고래의 눈이 슬퍼보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CG팀과 감독에게 했다. CG팀에겐 황당한 주문이었다. 고래는 작업 내내 상상 속에만 존재했지만, 친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 친구가 죽는 순간 긴 여정이 끝났다는 실감이 들었다.”

 -촬영중인 ‘서부전선’은 어떤 영화인가.

 “한국전쟁 중 삶과 죽음의 경계에 내던져진 사람들의 얘기다. 국군 병사로 설경구, 북한군 병사로 여진구가 출연한다. 시나리오를 쓰며 연출에 대한 꿈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유독 이 작품 만은 내가 연출하고 싶었다. 벌써 ‘웰컴 투 동막골’(2005)과 비교하는 시각이 있는데, 작가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해적’ 또한 할리우드 대작 ‘캐리비안의 해적’과 비교되지 않았나.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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