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의 글로벌 포커스] 美 금리인상 크게 걱정할 일 아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92호 18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10월에 양적 완화를 종료한다. 달러를 찍어내 국채 등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시장에 강제 주입하는 조치를 끝내는 것이다. 경제가 점차 회복함에 따라 위기 수습을 위해 동원했던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바로잡아 나가는 과정이다. 다음 수순은 기준금리를 올려 달러를 회수하는 일이다. 지금 세계는 Fed가 금리인상을 언제부터 단행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글로벌 유동성의 대이동을 야기해 금융·외환 시장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Fed의 금리인상 시점은 내년 중반쯤이 될 것이란 게 그동안의 시장 컨센서스였다. Fed도 그런 신호를 보내왔다. 하지만 최근 조기 금리인상설이 퍼지고 있다. 내년 상반기부터 단행될 것이란 관측이다. 근거는 미국의 성장·고용·물가 등 각종 경제지표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기 금리인상은 과연 가능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렇지 않다”는 쪽이다.

Fed의 정책 목표는 두 가지다.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다. 위기 이후 Fed의 지상 과제는 고용 회복이었다. 2009년 미 실업률은 10%까지 치솟았다. 그게 지금 6.1%까지 떨어졌으니 Fed의 돈 풀기 정책이 상당한 결실을 본 게 맞다. 그러면 Fed는 실업률이 얼마나 떨어져야 금리를 정상화하기 시작할까? 미국의 완전고용 시점은 실업률 5%대 초반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연준 멤버들은 실업률 5.2~5.6% 수준을 장기적인 균형 상태로 인식한다. 그 아래로 내려가면 임금이 과도하게 올라 인플레를 야기할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일러스트 강일구

미국 고용 늘었지만 질이 안 좋아
금융위기 이전 미 경제가 완전고용일 때 기준금리는 4~5%대였다. Fed는 실업률(현재 6.1%)이 5%대에 진입하면 완전고용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보고 기준금리(현재 제로)를 선제적으로 올리기 시작할 것이란 관측이 대두된다. 바로 눈앞의 현실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중요한 점 하나를 간과했다. 바로 고용의 질이다.

위기 이후 미국의 일자리 창출은 비정규직·시간제 중심이었다. 정규직 일자리는 위기 전과 비교해 여전히 300만 개 이상 적다. 고용의 불안정을 반영해 실질 임금은 6년째 거의 오르지 못하고 있다. 최근 1년을 봐도 명목임금이 2% 상승했지만 물가도 엇비슷하게 올라 실질임금은 제자리였다. 이는 가계의 구매력, 즉 소비가 신통치않은 주된 이유다. 고용이 늘어봐야 물가 걱정은 별로 없을 것이란 얘기도 된다.

재닛 옐런 Fed 의장도 이를 간파하고 있다. 그는 “고용 회복이 완성된 것은 시간당 임금 증가에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리인상 시점을 잡는 데 있어 임금지표를 감안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경제가 성장해도 고임금의 정규직 일자리가 생기기 힘들다’는 건 세계 각국의 공통된 고민이다. 미국은 여기에 더해 인구구조의 변화도 문제다. 고령화의 진행으로 고임금의 중년층은 줄어드는 대신 저임금의 노령층 노동자의 상대적 비중은 커지고 있다. 취업자 중 55세 이상 연령층의 비중은 2010년 20% 선이던 것이 현재 22.1%로 높아졌다.

다음으로 짚어볼 것은 인플레 문제다. Fed는 물가안정 목표치를 연 2%로 설정하고 있다. 올 들어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1.5~2.1%를 오르내렸다. 물가지표를 봐도 금리인상 채비를 슬슬 하는 게 맞아 보인다. 하지만 연준 내에서는 “물가 2%에 얽매이지 말고 경기를 다소 과열되게 끌고 가자”라는 초과 부양 목소리가 요즘 부쩍 커지고 있다. 이런 주장은 연준 내 중도파 진영에서 활발하다. 섣부른 금리 인상은 특히 내수 회복을 이끌어온 부동산경기에 직격탄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최근 유럽이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조짐과 함께 경제가 주저앉고, 일본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것도 Fed의 행보를 제약할 요소다.

Fed, 조기 금리인상설 내심 즐기나
Fed가 내년 중반 이후 금리를 올리더라도 그 속도와 폭은 매우 완만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인 핌코는 향후 미국의 적정 정책금리 수준을 2% 정도로 봤다. 과거의 절반 수준이다. 그만큼 미국의 성장 잠재력 자체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스탠리 피셔 Fed 부의장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저성장은 보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경제 체질의 변화, 즉 공급 능력의 저하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는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제기한 ‘영구적 침체론(secular stagnation)’과 일맥상통하는 관점이다.

그렇다면 Fed는 왜 조기 금리인상설을 진화하지 않는 걸까? 내심 즐기고 있기 때문일 게다. 돈을 잔뜩 풀어놓은 뒤 Fed의 최대 고민거리는 자산시장 버블이다. 주식과 부동산·원자재 등 자산가격에 거품이 잔뜩 낀 뒤 터지면 실물 경제는 다시 곤두박질할 수 있다. 시장이 조기 금리인상설을 자가 발전하며 몸을 사리는 게 Fed로선 매우 흐뭇한 장면일 것이란 얘기다.

김광기 이코노미스트·포브스 본부장 kikw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