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각료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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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0년대의 동서관계일반과 동북아의 군사정세를 둘러보면 미국과 함께 사실상 이 지역의 전략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한일 두나라가 물샐 틈 없는 협력을 하고 국력에 걸맞는 역할의 분담을 서둘러야할 생활임을 누구나가 인정하게 된다.
서울과 동경사이에 60억달러 안보경협에 관해 듣기 거북한 말이 오고 가면서도 각료회의가 유산되지 않고 오늘 개막을 보게된 것도 이런 주변정세와 시대적 요청에 대한 인식이 부화의 표피 밑에 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달의 외상회의에서 일본측에 공공 60억달러, 상업 40억달러의 차관을 요청하고 프로젝트별 사업계획까지 제시해 놓고 일본의 성의 있는 반응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이 할 일은 다한 셈이다. 회의의 성패는 「소노다」(원전직)외상일행에게 달려있다.
이 기회에 우리가 일본에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싶은 것은 5월의 미일공동성명과 7월의 오타와선언이다. 전자에서 「스즈끼」수상은 「레이건」대통령에게 『일본정부는 정부개발원조의 확대에 노력할 것이며 세계평화와 안정유지를 위해 중요한 지역에 대한 원조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제9항).
오타와선언의 제1항과 36항은 『동서관계에 있어 경제정책을 정치·안보목표에 부합시키기 위해 협의와 조정이 필요하다』는 표현으로 경제와 안보의 연계성을 확인했다.
한국의 차관 요청은 일본이 동의하고 서명한 미일공동성명과 오타와선언의 구체적인 적용사례에 불과한 것이다.
70년대에 소련과 북괴가 전력을 대폭 증강한 결과 동서서 힘의 관계에서는 소련이, 남북한간에는 북괴가 압도적인 군사력의 우위를 갖고 동북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 중간, 아프리카, 중남미, 유럽에서 비공산권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80년대의 세계정세다.
남북한간의 군사력의 불균형과 북괴의 단독 남침능력은 일본의 금년도 방위백서가 구체적인 숫자를 들어보인 것이다.
한국은 앞으로 5년동안에 군사력을 북괴와 비슷한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추가로 소요되는 자금 1백50억달러 중에서 일본에 60억달러의 공공차관, 40억달러의 상업차관을 요청하는 것이다.
현대전의 무기체재로 보나, 미국의 극동방위전략으로 보나, 한일 두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로 보나 한국의 안보는 곧 일본의 안보다.
지금까지 극동안보의 출혈은 한국과 미국이 도맡고 일본은 평화헌법을 방패로 한미 안보우산 밑에서 경제적인 번영을 누려왔다.
한국이나 미국이 일본에 요구하는 것은 오타와선언, 미일공동 성명의 정신에 따라 일본이 이제는 동북아시아 안전보강을 위해 국력에 상응하는 역할을 맡으라는 것이다.
그나마 군사적인 역할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이자 쳐서 갚을 테니 차관을 제공하여 결과적으로 동북아 안보로 연결되는 한국의 경제개발을 다소나마 도우라는 것이다.
일본은 안보경협은 곤란하다는 명분론을 내세우지만 우리의 상황에서는 경제 안보를 분리하겠다는 논리는 하나의 사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미군 1개 사단의 해외주둔비가 연간 10억달러다. 82년부터 5년간만 해마다 12억달러씩 싼이자의 돈을 한국에 꾸어주는 것은 일본이 그의 안전을 가장 싼값으로 보장받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그 돈으로 제3국에서 전투기나 탱크, 또는 군함을 사들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일본의 물자와 시설, 그리고 기술을 그들의 시장가격으로 수입하게될 것이다. 일본에는 이중, 삼중의 이득이 돌아간다는 의미다. 일본대표들은 안보경협이라는 말의 「안보」라는 말꼬투리만 잡지 말고 한반도의 심각한 힘의 불균형에 다시 한번 주목하기 바란다.
이번 회담을 성공으로 이끌지 못하여 소련과 북괴의 위협에 노출된 동북아시아의 안보체제에 큰 구멍이 뚫리는 사태가 오면 일본은 훨씬 비싼 대가의 안전보장책을 마련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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