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증세'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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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2년차에 ‘증세(세금 인상) 카드’가 하나 둘씩 슬그머니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담뱃값 인상으로 2조8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기로 한 데 이어 하루 만에 안전행정부가 12일 주민세·자동차세 등 지방세 인상과 감면 혜택 축소를 통해 1조4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기로 한 것이다.

 집권하기 전부터 “증세는 없다”고 공언해왔던 것에 비하면 상당한 기조 변화다. 2008년 이후 불과 몇 년 만에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등 복지 혜택이 대대적으로 늘어나면서 지방 정부들이 ‘복지 디폴트(지급불능)’까지 거론하는 상황에서 ‘복지 증세’ 조치가 나온 것이다. 선심성 복지 혜택이 결국 세금고지서로 돌아오는 형국이어서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현실로 닥친 셈이다.

 전문가들은 달라진 나라 살림 형편과 복지 확대에 따른 비용 부담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중앙과 지방의 방만한 재정 운용 실태에 대해 마른 수건을 다시 짜듯 대수술을 하고, 과도한 복지 혜택에 대한 다이어트에 들어가는 동시에 솔직하게 증세 필요성을 천명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등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안행부가 내년부터 시행하기 위해 15일 입법예고에 들어가는 ‘지방세제 개편 방향’에는 주민세·자동차세·지역자원시설세·재산세 인상, 지방세 감면율(23%)을 국세 수준(14.3%)으로 낮추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방재정 확충을 위해 10~20년간 묶여 있던 세금을 더 걷고 세제 감면 혜택은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시·군·구에 따라 ‘1만원 이하’를 받아 올해 전국 평균이 4620원인 주민세를 앞으로는 하한선을 정해 내년부터는 ‘7000원 이상~2만원 이내’, 2016년부터는 ‘1만원 이상~2만원 이내’로 인상된다. 주민세 인상 조치는 1999년 이후 15년 만이다.

 법인에 징수하는 주민세도 내년부터 대폭 오른다. 그동안 기업의 자본금이 아무리 많아도 5단계로 구분해 연간 최대 50만원만 거뒀으나 앞으로는 9단계로 구분해 최고 528만원까지 받는다.

91년 이후 동결돼온 영업용 승용차, 고속버스와 전세버스 등 승합자동차, 화물자동차의 자동차세도 대폭 오른다. 약 450만 대가 대상이다. 지역자원시설세도 올라 음료수용 지하수는 현재 ㎥당 200원에서 내년에 400원으로 100% 인상되고, 목욕용수용 지하수는 현행 ㎥당 100원에서 200원으로 역시 100% 오른다. 이렇게 되면 택시·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과 목욕탕 요금이 올라 물가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주택 재산세 부담도 커진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 급격한 재산세 상승을 막기 위해 도입된 ‘재산세 세부담 상한제도’가 개편되는 것이다.

그동안 지방세 감면 혜택을 누렸던 관광호텔·대형 병원·부동산 펀드 등에 대한 취득세·등록세 감면 혜택은 올 연말 일몰제에 따라 폐지된다. 산업단지·물류단지·관광단지·산학협력단·기업연구소·창업중소기업단지·벤처집적시설에 대한 지방세 감면 혜택은 대폭 축소된다.

안행부는 주민세(+1800억원), 자동차세(+1200억원), 지역자원시설세(+1100억원) 등을 인상해 4000억원의 세수 증대가 기대되고, 지방세 감면 축소로 내년에만 1조원의 세수가 늘 것으로 전망했다. 카지노·스포츠토토·복권에 레저세(최대 연 9000억원)를 물리려던 방침은 관계 부처 이견으로 이번에 빠졌다. 이주석 안행부 지방세제실장은 본격적인 증세 조치라는 지적에 대해 “지난해 취득세가 2조4000억원 인하돼 전체적으로 보면 증세는 아니다. 수십 년간 물가와 소득 인상을 반영하지 않았던 것을 현실화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담뱃값과 지방세 인상이 ‘서민 증세’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창용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증세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증세라는 것이 의도된 것으로 보기보다는 따라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손희준 청주대 행정학과 교수는 “소득세·법인세 등 부자들이 감세 혜택을 받는 큰 세목은 놔두고 서민에게 직접 부담을 지우는 지방세·자동차세만 건드렸다”며 “변죽을 울리지 말고 소득세·법인세 증세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세정·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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