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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세상보기] 확고한 믿음도 틀릴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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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뉴턴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1687년에 출간했다. 과학사를 통해 가장 중요한 저작의 하나인 이 책에서 그는 운동에 관한 논의를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전개했다.

질량과 무게를 구분하고, 운동의 세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시했으며, 그때까지 관측에 기초한 경험법칙이었던 케플러의 법칙을 보다 근원적인 면에서 설명했다.

그밖에도 지구의 세차운동,밀물과 썰물,혜성의 운동 등을 설명했다. 이로써 천상의 운동과 지상의 운동을 통일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뉴턴이 대단한 명성과 신뢰를 얻으면서, 열렬한 추종자 집단도 형성됐다. 대륙에서는 볼테르 등의 뉴턴주의자들이 그의 자연철학을 적극 홍보했고, 영국에서는 "하느님이 '뉴턴이 있어라'하여 모든 것이 밝아졌다"라는 말까지 돌았다.

천체역학뿐 아니라 자연의 모든 현상을 뉴턴 역학의 기본 원리를 이용해 수학적으로 설명하려고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뉴턴 역학은 정교한 수학적 체계를 갖추게 됐다.

그에 대한 신뢰도가 어떠했는지는 해왕성을 발견한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천왕성의 관측자료는 천왕성의 궤도가 뉴턴의 법칙으로 계산한 궤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당시의 과학자들은 이를 뉴턴 역학의 문제점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들은 천왕성 가까이에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다른 행성이 있을 수 있고, 이것의 영향으로 천왕성의 궤도가 변형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관측자료를 이용해 이 행성과 천왕성 사이의 거리를 근사적으로 계산하고, 이를 근거로 망원경을 통해 새 행성인 해왕성을 찾아냈다. 뉴턴 역학의 정당성을 입증한 극적인 사건이었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갈릴레이의 업적에서 출발한 뉴턴의 세계 이해는 이처럼 너무나 완벽한 것이었다. 세계에 대해 포괄적이고 빈틈없는 설명이 가능하게 됐고, 그 결과 오랫동안 확고하게 믿어왔던 중세의 세계관을 근대적인 세계관으로 완전히 바꿀 수 있었다.

이제 돌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혜성의 궤도조차도 신비한 것이 아니라 계산 가능한 것이 됐다. 관성의 법칙이나 가속도의 법칙에서 보듯 물체의 운동은 신령한 영이나 생명력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물활론(animism)의 잔재를 지워버렸다.

인간 정신을 주술과 마술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신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이후의 세계는 신의 간섭 없이 운행된다는 것을 알면서 인류의 세계관 안에서 신의 입지를 축소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확고하게 믿어왔던 것이라도 그것이 오류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확고한 믿음이 오류일 수 있다는 것에는 뉴턴 역학도 예외일 수 없었다.

자연과학이 다루는 영역이 확대되고 관측의 정밀성이 증대함에 따라 그렇게 신뢰했던 뉴턴 역학에서도 그 전에 보지 못했던 오류가 드러났다. 뉴턴 역학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물리학의 위기는 상대론과 양자론이 나오고 나서야 해소됐다.

성서의 해석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근거한 중세의 자연관이 뉴턴의 세계 이해로 바뀌고, 이것이 다시 현대물리학의 세계상으로 바뀐 것이다.

과학의 역사는 기존의 인식체계를 버리면서 세계를 새롭게 보는 끊임없는 과정일지 모른다. 내가 아는 것, 내가 고집하는 것을 버릴 때 고양(高揚)의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닌가.

양형진 (고려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