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증인」 운전사|"엄청난 소송비 누가보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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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얼굴 없는 증인」의 진술이 첨부된 교통사고사건의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지검 남부지원 송기홍 판사는 21일 교통사고 피해자가 혼수상태에 있는 사이 경찰이 신원불명의 「피해자의 동생」으로부터 진술조서를 받아 사건을 송치했다하여 물의를 빚었던 최길현씨(38·서울화곡4동 796)의 업무상과실치상 사건에 대해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히고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0개월 동안 이사건을 심리해온 재판부는 『수사기록을 아무리 살펴도 최씨가 교통사고를 냈다는 증거가 없으며 현장검증을 해보아도 마찬가지였다』고 밝히고 『최씨의 잘못으로 교통사고가 일어난 듯 하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은 믿을수 없다』고 무죄판결 이유를 밝혔다.
최씨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지난해 4월17일밤 11시15분쯤. 친구인 윤경삼씨(35·서울미곡동산21)를 자신이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좌석에 태우고 서울구로동 637의 고척교를 지나던 중 뒤따라오던 서울5사 4734호 시내버스 (운전사 양운석·39)에 떠 받혔다.
(이 부분에서 검찰은 공소장에서 최씨의 오토바이가 약20㎝ 높이의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순간 그충격으로 뒤에 타고있던 윤경삼씨가 퉁겨 떨어지면서 버스에 치였다고 주장하는 한편, 최씨는 1차선을 타고 가던중 버스가 뒤에서 떠 받아 사고가 났기 때문에 과실은 운전사 쪽에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 사고로 윤씨는 40여일 동안의 혼수상태 속에서 한차례의 뇌수술과 두번의 다리절단 수술을 받고 현재까지 한강성심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있으며 최씨 또한 윗이빨 7개가 부러지고 오른손목이 골절되는 등 전치6주의 상처를 입었다.
경찰이 피해자 조서를 작성한 것은 최·윤씨가 혼수상태에 있던 사건다음날인 4월18일.
이사건을 담당한 영등포경찰서 이모형사는 자칭 피해자 윤씨의 동생이라며 제발로 출두한 「윤경태」란 유령인물로부터 신원도 확인하지 않고 『오토바이가 잘못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아… 사고를 일으켰다는 말을 들었다』는 피해자에게 불리한 조서를 받아 이사건을 송치했다.
이는 사고의 1차 원인이 오토바이에 있다는 것으로 최씨에게는 결정적으로 불리한 진술.
최씨가 이같은 사실을 발견한 것은 이사건이 기소된 후인 지난해 11윌. 최씨는 친구 윤씨로부터 『윤경태란 동생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피해자도 모르는 유령인물의 정체를 밝혀달라』고 각계에 진정했다.
지난 4월10일 이같은 사실이 중앙일보에 보도되자 관할 영등포경찰서는 경찰의 명예를 내걸고 컴퓨터조회, 진술조서에 찍힌 윤경태의 지문감식, 피해자가족 및 주변인물 등을 중심으로 수사를 벌였으나 결국 정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윤경봉」란 인물이 과연 실존인물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켰었다.
비록 무죄를 선고받기는 했으나 최씨와 윤경삼씨는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씨는 불구의 몸으로 1년4개월째 보상은 고사하고 6백만원이 넘는 치료비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최씨도 5백만원이 넘는 치료비와 10개월 동안의 소송비용을 대느라 전세집을 줄이고 전화까지 팔아야했다.
당초 이사건을 담당했던 영등포경찰서 이모형사는 사건직후 조사를 받았으나 「지난해 12월29일 이전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사면령에 의해 책임이 면제됐다. <김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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