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9)제74화 한미외교 요람기(36)|「아이크」의 방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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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휴전회담을 얘기하기에 앞서 약간 선후에 문제가 있지만 편의상「아이젠하의」의 방한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대통령 당선자인「아이젠하워」의 한국방문은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신변을 고려해 철저한 보안에 가려져 있었다. 미국언론도「아이젠하워」의 방한에 관한 보도를 그가 한국에 도착한지 3일 후에야 했을 정도로 보도관제에 협조했다.
지금부터 하고자하는 얘기는 국내에서 발생한 일이라서 나중에 파악한 것이지만 「아이젠하워」가 52년 12월2일 수원비행장에 내렸을 때 한국정부 인사는 아무도 없었다. 도착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와이·미드웨이·웨이크도·유황오등을 거쳐 수원비행장에 도착한「아이젠하워」는 미8군사령부 대령 1명만의 영접을 받았다.
이렇듯 은밀하게 한국 땅에 내린「아이젠하워」는 수행한「브래들리」합참의장·국방장관 내정자였던「찰즈·월슨」 등과 함께 승용차 편으로 서울의 미8군사령부로 직행해 동경에서 역시 비밀리에 날아와 대기하고 있던「클라크」유엔군사령관·「밴·플리트」8군사령관과 함께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갔다.
이승만 대통령은 11월21일「클라크」장군으로부터 귀띔을 받아「아이젠하워」의 방한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아이젠하워」를 대대적으로 환영해주려고 마음먹었다.
그때까지 부산임시수도에 머무르고있던 이 대통령은 진현식 내무장관을 따로 관저로 불러들여 군·경 합동으로「아이젠하워」방문에 대비한 경비를 철저히 해두도록 지시했다.
진 장관은 즉시 서울로 올라와「아이젠하워」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김포 비행장에 이르는 연도에 대해 예비경계작업을 벌였다.
11월말부터는 도시마다 환영행사가 벌어졌다. 거리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부꼈다. 현수막도 네 걸리고 꽃 전차까지 운행됐다.
「클라크」장군은 깜짝 놀랐다. 대통령 당선자의 신변이 크게 우려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이 대통령에게 환영행사 등으로 입장을 난처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는 「아이젠하워」의 도착일시와 장소를 이 대통령에게조차 비밀에 붙여버렸던 것이다.
「클라크」장군의 회고에 따르면 서울 동숭동 서울대문리대자리의 미8군사령부에 도착하자마자「아이젠하워」는『「존」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의 외아들「존」소령이 한국전에 참전하고 있었던 것이다.「클라크」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계획과 한국군 증강문제를 거론하려 했으나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휴전 가능성에만 관심을 나타냈다.
그 이튿날 잠에서 깨어난「아이젠하워」는「클라크」와「밴·플리트」로부터 전황을 브리핑 받은 후 3사단 작전국 차장으로 복무하던「존」소령을 만나보자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기다리다 못한 이 대통령은 전선시찰 후 하오4시쯤 돌아온「아이젠하워」를 미8군으로 찾아갔다. 백선엽 육군참모총장이 수행했다.
이 대통령과「아이젠하워」는 간단한 의례적인 인사를 나눴다. 이 대통령이 환영행사를 마련하겠으니 참석해 달라고 초청했다.「아이젠하워」는 시간이 없어 참석할 수 없다는 뜻을 설명했다.
이튿날「아이젠하워」는 경비행기편으로 영연방사단, 8055야전병원, 미2·3사단, 프랑스대대, 한국군l사단·수도사단을 시찰했다.
이 대통령은 수도사단에 미리 가서「아이젠하워」를 영접하고 송요찬 사단장으로부터 함께 브리핑을 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서울로 돌아왔다.
이날 하오「아이젠하워」는 떠나게돼 있었다. 출발시간이 가까와 오는데도「아이젠하워」 는 이 대통령에게 답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클라크」는 혹시 거만한「아이젠하워」가 이 대통령에게 작별인사조차 하지 않고 떠나는 결례를 저지를까봐 걱정했다.
그러나 결국 경무대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 대통령에게「아이젠하워」의 전갈이 왔다. 시간관계로 고별인사를 하지 못하고 떠난다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약소국의 처량한 처지에 비감해 하면서도「아이젠하워」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대통령은 즉각「아이젠하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귀하가 이곳에 오지 않는다면 본인은 곧 국무위원들을 집무실에 불러들여 직접 성명서를 발표하겠다. 본인은 성명서를 통해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된「아이젠하워」장군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면서 한국 원수에 대한 고별인사의 예의를 하지 않고 떠났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공표 할 생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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