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까마득한 금융국제화|정부「보증」없인 꿔올 엄두못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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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은행의 인기부서중의 하나가 외환업무쪽이다. 지점장쯤 되어도 외환업무를 모르고서는 늘 변두리지역에 밀려나 있기 십상이다.
좀 심한 경우지만 얼마전 외환은행이 행원들을 대상으로 희망부서를 설문한 결과 90%이상이 뉴욕지점근무를 원했던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어쨌든 은행도 그 전과는많이 달라져 가고 있다. 무역회사 직원들이 영어를 못하면 까막눈 취급받듯이 은행원 역시의 외환업무를 모르고서는 제행세를 하기 어렵게 변모해간다.
우리나라 은행이 해외에 나가서 차린 지점과 사무소가 91개 (80년말 현재) 에 달하고 국내에 들어와 영업을 하고있는 외국은행 지점들도 37개나 된다.
이 모두가 우리 금융시장도 점차 국제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손쉬운 예들이다.
특히 최근들어 외국과의 합작은행이 들어서고 시중은행의 민영화를 계기로 금융국제화의 경쟁은 본격적인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 그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인가.
그동안 은행들이 이룩한 국제화란 기업들의 무역금융 일변도였고 국제금융시장에서 돈 빌어오는것 역시 정부가 지급보증을 한것이나 다름없은 형편이니 말이다.
정말 금융이 국제화 하려면 우선 돈거래가 국경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국제수지가 만성적으로 적자인 우리입장에 서는 될법한 일이 아니다.
세계금융시장에서 활개를 친다는 일본의 은행들도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장사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전체 은행이익의 10%에 불과하다.
미국계 은행의 경우 50∼60%를 차지하는 것에 비하면 상당한 차이다.
우리의 국제화가 벌써 그런 차원을 도모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필요한 돈을꿔다 쓰긴 써야겠는데 얼마나 싸게 빌어 쓸수 있게 하느냐가 구체적인 당면과제다.
전문가들의 만계별 분류를 빌지 않더라도 우리의 금융국제화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는것이다(사실 국제화 운운하면서 시중은앵의 자본금이 1억달러가 조금넘는 규모(7백50억원)라면 창피스러운이야기긴 하지만…) 수출업자들이 내미는 네고서류도 중요하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 바가지 쓰는 일도 없어야한다.
국내은행이 외국은행단으로 부터 뱅크론을 들여 올때 전주들을 모집해준 댓가로 간사은행에 보통 1%의 수수료를 준다.
5억달러를 빈다면 이자말고도 5백만말러의 생돈을 지불해야한다.
금리건 수수료건 워낙 덩치가 크니까 0·1% 상관으로도 이처럼 막대한 돈이 왔다갔다 하게 된다.
싸게 빌어쓰려면 그분야의 전문가가 되는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입장에서 전문지식마저 달리면 더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계약서 하나를 작성하더라도 내용을 샅샅이 알아야 우리쪽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다.
현재 추진되고있는 합작은 행의 경우에는 BOA측의 빈틈없을 사전준비에 우리측 투자자들이 얼마만큼 충실히 맞을 준비를 했었는지가 궁금하다.
컴퓨터 화면에는 각국의 외환시세가 시시각각으로 나타난다. 국제금융시장의 달러들은 10초이내에 사고 파는 것을 결정해낸다. 싸니 비싸니 토의에 붙일 여유가 없다. 십중팔구는 딜러 자신의 육감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결정한다. 오랜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은 그만큼 신속하고 민감하게 돌아간다.
외환은행이 지난 78년부터 딜러제도를 시작해 30여명의 전문요원을 양성하고 있으나 시중은행의 경우 아직도 엄두를 못내고 있다.
우리도 이런 일부러 서둘러야 한다. 꼭 컴퓨터와 렐렉스앞에 앉아있어야 딜러는 아니다.
해외지점에 나가있는 직원 모두 홀륭한 딜러가 될수 있다.
딜링하는 것은 돈뿐만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를 수집해서 공급하는 것도 훌륭한 돈벌이요, 금융국제학에 꼭 필요한 밑거름이 된다.
일이 어렵고 전문적일수룩 집중적으로 키워야 한다. 지금처럼 해외지점 근무나 연수가는 것이 무슨 운전이나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풍토에서는 곤란한 일이다.
일본 동경은행의 경우 해외지점 직원들의 근무기간이 평균 10년이 훨씬 넘는다는 사실도 바로 전문학를 위한 양기포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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