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4)<제74화>한미 외교 요람기(31)|휴전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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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50년12월11일「트루먼」대통령주재로 열린 미 국가안전보장회의는 한국전쟁 처리방법으로 휴전을 고려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 같은 결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회의내용의 요점은 세 가지였다. 첫째 한반도 전쟁을 다루는데 있어서 휴전회담을 고려할 것이다. 그러나 유엔군이 군사적으로 곤경에 빠지거나 정치적으로 양보하는 방향으로 회담이 이루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둘째 휴전성립에 앞서 유엔군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휴전 세부사항에 관한 협상이 선행되어야한다.
셋째 미 합참본부는 휴전수락이 가능할만한 군사적 조건을 긴급과제로 검토한다.
이 같은 결론이 나온지 이틀만에「애치슨」국무장관은 주 유엔 미 대표부에『「트루먼」 -「애틀리」 회담에서 설정된 노선을 따르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시 말해 미국은 한국전을 평화적으로 끝내기 위해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주지시킨 것이다.
이미 한국정부도 미국이 전쟁을 휴전으로 몰아가고 있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이승만대통령은 장면대사에게 미국정부의 저의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장 대사는 국무성을 네 차례나 잇달아 방문하고 백악관까지도 드나들었다.
맨 처음 장 대사는 국무성의「딘·러스크」극동담당차관보를 찾아갔다. 12월4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 대사는『한국 국민은 공산주의와 대항하여 끝까지 싸울 것임을 본국정부의 지시에 따라 다시 천명하기 위해 왔다』고 서두를 꺼냈다.
첫마디부터 휴전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을 단호하게 내포하고 있었다. 장 대사는 한술 더 떠서 『우리에겐 전선으로 나가기를 열망하는50만명의 반공청년들이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들 50만명의 무장이다. 그것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장 대사는 미국의 대중공 태도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대한민국은 미국이 중공군에 유화정책으로 대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장 대사는 다시「머천트」부차관보도 만났다.「베빈」영국외상이 미·중공간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 완충지대를 설치하자는 제의를 했다는 외신보도를 거론했다.『한국정부는 한국영토 안에 완충지대가 설정되는데 대해 찬성할 수 없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미국과 유엔은 공산침략자를 끝까지 격퇴하려는 결의를 굳혀주면 좋겠다. 이 같은 한국의 입장을「트루먼」대통령에게 전달해주기 바란다.』「머찬트」부차관보는 이 같은 장대.사의 안타까운 호소에 대해『한국민의 결의와 용기를 충분히 알고있다』고 위로하고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중공정권에 대한 지나친 제재를 포함하는 유엔결의안을 제출할 경우 많은 회원국이 반대하기 때문에 곤란하다』며 난색을 보였다.
유엔본부에서 활동하고 있던 임병직 유엔대사와 나는 유엔에서 휴전 무드가 조성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이대통령에게 강력한 대중공 제재가 필요하다고 보고했고 이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워싱턴의 장 대사에게 미 정부에 대한 교섭을 지시했던 것이다.
장 대사는 12월5일 또 국무성에 들어갔다. 이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암담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맥아더」장군이 어쩌면 유엔군이 한반도에서 물려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전황 보고를 상부에 올렸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됐기 때문이다.
장 대사는「러스크」에게 낙담한 얼굴로 물었다.『유엔군이 중공군을 격퇴하지 못하고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경우엔 한국민은 다 죽어버릴 것이 아니냐』
「러스크」는 이에 대해『미국은 한국전쟁을 포기하거나 혹은 군사적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경우가 아닌 한 철군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군사적 상황이 아주 절망적인 것은 아니며 아직 수습할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러스크」는 매우 우울한 말을 장 대사에게 꺼냈다.『미국은 군사적으로 강요당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미군이 한반도를 떠나야할 경우, 물론 그런 일이 없겠지만, 한국망명정부수립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대사가 원한다면 그것에 대한 의견을 알고 싶다』
이 대목은 본국에 보고됐는데 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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