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이 몰고온 회오리|가열거듭하는 영국폭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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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선거유세중 영국수상 「마거리트·대처」여사는 한 외국기자로부터 『당신이 공약한 경제정책을 실제로 실시할 경우 경찰관의 수를 지금보다 훨씬늘려야 치안을 유지할 수있는사태가 오지않겠는가』라고 질문을 받았었다.
이때「대처」여사는 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당신 질문은 주파수가 맞지않아 잘 들리지 않는다』고 일축했었다.
그러나 우연인지는 몰라도 「대처」여사는 다우닝가10번지의 수상관저에 들어서는 즉시 바로문앞까지 일반인이 접근할수있게 되었던 종전의 관례를 고쳐 그앞에 철책으로 막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 철책을 다우닝가 입구로 다시 밀어내어 이제는 일반인이 수상관저로 접근조차 할수 없도록 경비를 강화했다. .
10일째 계속되고있는 영국의폭동사태를 실업자의 수를 늘려온「대처」수상의 경제정책하나만으로 실명하는것은 분명 무리지만 경제정책↓실업자증가↓폭동으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는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대처」여사가 실시한 재정긴축정책에 의한 인플레억제정책은 중소기업의 도산사태 (1년전에비해 50%증가)와 조업단축및생산업체의 종업원 감축사태를 몰고와 실업자는「대처」집권2년동안에 2배인 2백60만명(11·1%)으로 늘어났다.
11·1%라는 전국적인 실업률은 대도시에서는 2배가되고, 대도시중에서도 외래인이 집중해있는 저소득층 거주지역에서 또 그 몇배로 늘어나게 되었다. 현재 폭동이 일어나고 있는지역은 모두 이처럼 실업자수가 집중돼 있는 지역과 일치한다.
수상관저의 경비가 삼엄해진것과 비슷한 현상이 이번 폭동을 계기로 시민생활속의 안정되고 평화롭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미국의 대도시 점포의 진열장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도난방지용 철망이 갑자기 영국대도시의 점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이번과 같은 유형의 폭동사태를 역사상 처음 맞고 있다. 불타버린 자동차, 길거리에 던쳐진 유리병, 벽돌조각등 지난밤에 있었던 폭동의 잔해너머로 즐비하게 늘어선 이 복면한 점포들의 모습은 영국사회가 겪고 있는 전후 최대의위기를 말해주고 있다.
동시에 유럽에서 유일하게 무장하지 않는 경찰을 자랑해온영국에서 처음으로 최루탄이 발사되고 플래스틱탄·장갑차 워터 캐논 (물을 쏘는포) 등 새로운 폭동진압용 장비가 구입돼영국사회의 안정을 과시하는 상징으로 내세우던「친절한 경찰관」의 모습도 사라지게 될것같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뜻하는 위기가 국가의 안위나 정권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폭동이 다발적으로 일어나기는 해도 모두 외래민족과 저소득층 백인들이 사는 지역안에서 일어나고있는 폭동의 주역이 어떤 정치적 조직없이 즉흥적인 파괴활동을 하는 10대청소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경찰서와 소방서가 한두군데 습격당하기는 했지만 관청이나 금융·상업중심가를 공격하는것과 같은 의도적 파괴행위는 아직 없다.
물론 주택가가 위협받고 있지도 않다.
지난 열흘동안 일어난 폭동은 영국안 30여개도시에 퍼져나갔고 런던에서만도 한국인들이 사는 푸르니일대를 비롯해서 20군데에서 소요가 있었다. 곳곳에서 수백명의 경찰이 부상하고 검거된 민간인수도 1천명을 넘었다.
처음 인종문제가 불을 질렀던 이 폭동은 차츰 새로운 헝태로 변모해가고 있는것같다.
변모의 주된 줄기는 폭동이 인구 수십만정도의 소도시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과 백인청소년도들이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정부는 현재 런던·리버풀·맨체스터등 대도시의 폭동은 실업과 생활환경악화등 이해할만한 불만에서 나온것으로보고 소도시의 폭동은 이를본뜬「모방폭동」으로 규정하고있다.「대처」수상과 일부 각료들은 심지어 폭동이 가난이나 부업과직접 관계없는 탐욕에서 연유되었다는 공식입장을 취하고있다.
이런 견해 때문에 「대처」여사는 지난주 의회에서 한 노동당의원으로부터 두번이나「바보여자」라는 모욕을 받았다.
이런 판단에서 정부는 폭도들을 재판할 특별재판소를 설치해 중형에 처하고 17세이하의 폭도들의 부모에게 벌금을물리며 폭도진압방법을 보다 공격적으로 바꾼다는등 강경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신문들에 반영된 견해는 그런 강경책 일변도로는 사태를 수습하기 어렵다고 보고있다.
업저버지는 「청년전쟁」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 폭동은 사회에서 외면당한 저소득비젊은이들의 반발이라고 규정하고있다.
그런 면에서 이 폭동은 60넌대 월남전반대운동을 중심으로 구미에서 일어났던 중산층청년, 즉 대학생중심의 반체제운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60년대 대도시에서 일어났던 인종폭동이 강경한 진압방법으로 오히려 악화되었다는 예를들어 정부가 저소득층의 생활개선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만이 이번 사태를 장기적으로 수습하는 일이라고 유력지들은 주장하고 있다.【런던=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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