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7)제74화 한미 외교 요람기(2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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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38선 돌파 문제에 관해 국무성 관계자들이 이견으로 맞서있던 때에 「애치슨」 국무장관은 여름 휴가 중이었다.
8월말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애치슨」의 책상 위에는 한국문제에 관한 「조지·케넌」의 메모랜덤이 올라와 있었다.
당시 「조지·케넌」은 국무성을 떠나 국방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었다.
「케넌」의 주장을 한마디로 하자면 "한국전 발발과 동시에 미국이 침략을 격퇴하겠다고 한 결정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 반소 정권을 수립할 필요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케넌」은 또 한반도는 소련에 대립하여 독립을 유지할 수 없는 지역이라고 주장하고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 지역에 대해 일본의 영향력이 강대해지는 게 오히려 좋겠으나 그것이 없는 실정이라는 이유를 달았다.
소련 문제에 관한 정통한 권위자로 알려진 「케넌」이 소련 영향권 안에 한국이 들어감으로써 극동지역의 평화가 유지될 것이며 전후 서 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 이익이 향상되리라고 보았다면 사고에 상담한 문제점이 있었던 것이며 도덕성을 상실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다행히 「애치슨」은 「케넌」의 건의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이 때쯤에는 「전쟁발발 이전 상태로의 복귀」라는 종전 생각과는 달리 38선의 존속 가치가 있느냐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38선은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와 아울러 국방성도 7월30일 소련·중공이 개입하지 않는 한 유엔군은 궁극적으로는 한반도에 통일된 독립 정부를 수립할 요건이 조성될 때까지 군사 행동을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50년 9월1일 미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도 소련·중공의 개입 가능성이 없는 한 38선을 무시하자는 결정이 나왔다.
「트루먼」 대통령도 38선 돌파 쪽으로 기울어졌다.
유엔 총회도 이 문제로 논란을 겪었다. 유엔 안에서는 전략적 고려와 정책적 고려가 맞섰다.
미국에 동조하지 않은 나라들은 소련·중공의 반응을 분석해 돌파하지 않는 방향으로 종용했다. 인도 대표는 중공의 개입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우리 대표단은 각 국 대표단을 찾아다니며 전쟁을 결정적으로 끝낼 생각이라면 38선을 넘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병직 대표를 비롯한 우리 대표단은 "47년 유엔 결의안이 통일된 독립 정부 수립을 유엔 목표로 정한 이상 이제야말로 결의안을 관철시킬 때가 왔다" 고 설득을 벌였다.
한국 대표의 피나는 호소와 미국의 입장에 찬성을 표시하는 나라가 상당히 많았다. 이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이 신속하게 대처했기 때문에 유엔의 집단안보 원칙이 준수될 수 있었으므로 한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미국의 공식 입장이 인천상륙 직후인 9월20일 유엔 총회에서 표명됐다. 「애치슨」 장관은 기조연설을 통해 "유엔군의 군사 행동은 38선 이북으로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반도에 통일된 독립 정부가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유엔 결의안의 정신을 수행하는 것이다"고 선언했다. 「오스틴」 미국 유엔 대사도 "유엔군은 막대한 희생과 고통과 비극을 겪으며 찬란한 승리에 도달하고 있다. 다시는 침략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야한다. 적이 가공의 벽(Artificial Barrier=38선)뒤로 피하게 해서는 안 된다. 만약 피하게 한다면 한국의 평화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뿌리를 다시 박게 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북한의 남침 행동으로 38선은 소멸됐다. 더 이상 이런 선을 존속시키지 말자"고 연설했다.
결국 미 합동 참모회의는 9월말 「트루먼」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여러 가지 조건을 붙이기는 했어도 「맥아더」 장군에게 38선 돌파의 재량권을 부여했다. 합참의 지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적군을 완전히 격퇴할 것. 소련·중공이 개입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필요한 경우 38선 이북에 군사적 행동을 취할 것. 둘째, 유엔군은 소련·중공의 국경을 침범하지 말 것. 특히 동북 전선에는 한국군만 투입할 것. 셋째, 소련·중공이 개입할 경우 전투는 계속하되 방어작전에 국한할 것."
「무초」 주한 미국 대사와 「맥아더」 장군은 소련·중공을 자극시키지 않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38선 돌파 결정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수행할 생각이었다.
이에 따라 「맥아더」 장군은 10월1일 두 번째로 김일성에게 무기를 버리고 적대 행위를 중지하라는 항복 종용 방송을 내보냈다.
「맥아더」 장군과 「워커」 8군사령관은 특히 끈질기게 38선 돌파를 요청해온 이 대통령에게 한국군의 단독 행동은 안 된다고 경고했다. <계속>【한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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