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시대의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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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역적으로 광대하고, 정치·문화·종교·인종·역사, 그리고 경제의 발전단계가 한없이 다양한 것, 이것이 태평양지역의 특성이다.
그래서 아세안이 처음 창설되었을 때 복잡다기한 회원국들 사이에 이해가 일치되는 공통분모를 찾기가 어렵고, 따라서 아세안은 일종의 사교클럽 비슷하게 끝나리라고 그 장래를 비관적으로, 또는 냉소적으로 전망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세안은 창설 14년이 지난 오늘, 지역협력기구로 착실한 성장을 기록하여 비관론자와 냉소주의자들의「기대를 배반」하고 있다.
정치전략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소련의 팽창주의정책이 아세안회원국들에 공동의 위기의식을 제공하면서 아세안의 노선을 우선회시켜 놓았다.
아세안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후공과 베트남의 캄보디아침공을 소련세의 팽창이라는 동 일 선상에서 상호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면서부터 동남아의 안전보장을 심각하게 걱정하게 되었다.
궁여지책으로 아세안 중립화지대 구상이 나왔지만 전략적인 인도양과 태평양의 길목에 위치한 지정학적인 사정은 소련에 「중립」의 존중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배경에서 아세안은 「레이건」행정부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초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맡겠다는 기본방침을 환영했고, 캄브디아 문제해결의 주도권을 잡고나선 것이다.
그러나 유동적인 아시아정세에 대한 아세안의 불안을 해소시키기에는「레이건」행정부의 아시아정책과 군사전략이 아직은 외교적 수사와 구호의 범위를 넘어설 만큼 선명하게 세워져있지 않다.
더러는 일본의 역할을 기대하기도하지만 일본은 국내사정 말고도 동남아침략과 점령의「전과자」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있다.
더우기 최근에 와서는 미·중공관계가 미국의 대중공 무기공급방침으로까지 발전하자 소련세 견제라는 공동의 이해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말레이지아 같은 아세안 회원국은 중공의 대아세안영향력 확대에 위협을 느끼고, 싱가포르 같은 경우는 중공세 남하의 수충지대로 소련·베트남 지배하의 인도차이나 현상유지의 인정이 불가피하게 되지나 않을까 크게 걱정한다.
이런 딜레머에 빠진 아세안에 등장한 뉴페이스가 전두환대롱령의 순방으로 대표되는 한국이라는 「균형추」다.
전대통령과 아세안 각국수뇌들의 공동성명은 유동적인 태평양지역에서 동북아와 동남아의 평화와 안전보장은 서로 연결되는 것이고, 따라서「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양쪽지역 모두의 안정을 유지하자고 굳게 다짐하고 있다.
전대통령이 아세안방식의 캄보디아문제 해결을 지지하고, 아세안 각국이 전대통령의 남북한의 수뇌회담과 유엔 동시가입을 지지한 것은 바로 동남아와 동북아 안보의 연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결국 전대통령의 아세안순방이 거둔 정치전략상의 성과는 아세안이 한국을 동남아지역의 「안정요소」로 맞아들여 관념적으로나마 한국과 아세안이 안보문제에 관한 한 동맹관계는 아니면서도 국가이익은 물론이고 동양적인 의리와 정의로 묶여진 공동운명체같이 관계가 밀접해진 것이라고 하겠다.
전대통령의 아세안 순방목적을 놓고 안보 우선이다, 경제 우선이다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공론이다.
안보 없는 경제발전, 경제력 없는 안보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전대통령의 아세안순방의 수확은 경제와 안보의 양쪽이 이상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
아세안 5개국들은 한국이 아세안의 인적자원개발·사회간접자본 시설확충에 참여하고 민간레벨의 합작진출, 제3지역에의 공동진출을 적극 추진하는 것을 환영했다.
한국은 자원의 안정공급을 보장받는 대신 아세안이 필요로 하는 중화학제품의 공급, 우리가 축적한 기술의 이전을 약속했다.
한국과 아세안 각국은 이중과세방지협정·투자보장협정을 위한 교섭에 착수하는데 합의했고 당장 이달부터 아세안의 경제관계 각료들의 서울러시가 예상될 만큼 경제분야의 논의가 깊고 넓었고 결론도 정상회담으로서는 이례적이라고 할만큼 구체적이었다는 것이 공동성명에 나타나있다.
세계은행이 최근 발표한 한 연구보고서는 태평양국가들이 21세기를 향해 가장 활력있고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70년대에 두 차례의 석유위기를 겪으면서도 태평양연안국가들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한 사실이 태평양시대론과 관련하여 자주 지적된다.
일본이 78년 「환태평양공동체」를 제창하고, 성과는 없었지만 79년 그 1차회의가 열렸던 일, 80년에 「태평양회의」가 열리기 무섭게 일본이 관민연락회의라는 것을 구성한 일등은 「폭발직전」에 있는 남태평양의 경제적인 잠재력에 대한 일본다운 대비라고 하겠다. 「스즈끼」수상은 지난 1월 아세안을 순방하고 아세안 각국에 인재훈련센터, 오끼나와에 그것들을 통일·운영하는 국제인재센터를 세우기로 하고 82년도 예산에 2백억엔을 책정해 놓고있다.
일본경제신문이 싱가포르발 해설기사에서 가까운 장래에 한국이 아시·태평양지역의 국제정치에 일본이상의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등장할 가능성을 지적하고, 『일본의 아세안외교에 호적수가 나타났으니 일본은 한층 세련된 수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고 경고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중공이라는 큰 변수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세력구조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를 예의주시하면서 국가원수가 친히 적도직하의 무더위속을 동분서주하며 닦아놓은 한국-아세안의 우호·협력의 길을 안정되고 번영하는 「태평양시대」로 연결시키는 노력을 우리정부와 기업 모두가 아끼지 말아야겠다.
전대통령이 2주간의 여로에 뿌린 「우호의 씨」를 어떻게 가꾸고 키우느냐에 우리의 「내일」이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깊이 명심하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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