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들은 왜 방황하는가(37)외로운 장애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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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이들이/모두 돌아간 텅 빈 교실에/외로이 남은 꽃병하나,
너무도 심심해/창가로 날아드는 호랑나비 보고/손짓하며 부릅니다.
나비 님 저는 외로와요/저와 같이 놀아주지 않겠어요/아무리 목이 터져라 불러봐도/호랑나비는 듣지 못하고 날아가 버립니다 (김기식 지음 "잔디처럼 민들레처럼-어느 장애자의 일기" 에서)
서울 C중 3년 박 모군 (16)은 생후 10개월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지체부자유아. 그 동안 특수 재활과정을 거쳐 지금은 목발을 짚으면 어느 정도 보행을 할 수 있고 또 일반학교에 입학, 성적도 상위 그룹에 속하지만 학교생활에서 그만이 느끼는 고충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체육시간엔 외톨이>
특히 체육시간이면 언제나 교실 당번을 맡아놓고 하는 박 군은 마음껏 운동장을 달리는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곤 한다.
지난해 12월 한국 보건개발 연구원이 전국 4백 개 구역 2만9천3백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표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애자 총수는 90만1천8백여 명. 장애 유형별로는 지체장애가 가장 많고 (66.1%), 다음으로 청각장애·정신병·정신박약·언어장애의 순이다.
전체 장애 인구 중 6∼17세의 학령기에 있는 장애자수는 약76만3천6백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체 학령 인구의 7.2%에 달하는 숫자. 이중 장애 정도가 심한 3분의1은 분리 특수 교육을 시켜야 하며, 나머지는 일반학교에 통합교육이 가능한 것으로 돼 있다.
현재 전국 61개 특수학교와 4백14개 특수 학급에서 분리교육의 혜택을 받고있는 장애자는 겨우 1만6천3백86명으로 분리 교육 대상자 24만6천8백 여명의 6.6%에 불과한 실정. 또 통합교육 대상자 중 상당수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막상 통합 수용된 학생들도 개개의 장애 상태를 고려한 특수지도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단국대 김승국 교수 (특수교육)는 이에 대해 "우선 현재 절대 부족상태인 장애자 특수학교·학급의 수를 대폭 늘리고 현재 국민학교 과정에만 그것도 학년을 무시, 1개교 1∼2학급으로 돼 있는 특수 학급을 전학년으로 확산시키며, 이룰 운영해갈 전문교사를 충분히 확보·배치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제도와 시설 상 미비·부족과 함께 장애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이해 부족도 큰 문제. 지난번 서울 봉천 중에서 발생한 남구현 군의 자살사건은 장애 학생에 대한 주위의 무관심과 이해 부족이 빚은 슬픈 사건이었다.
서울 삼육재활원 사회사업과 이진명 과장은 "장애 상태가 지극히 나빠 부득이 일반학생과 분리교육 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제의하고는 되도록 이면 일반학교에 수용. 정상 학생과 함께 생활·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최근의 세계적 추세로, 덮어놓고 특수학교·학급에 격리 수용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라"면서 "이 경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전문교사의 특별한 보살핌과 교사와 학생들의 따뜻한 격려"라고 역설한다.
장애자가 자신의 불행을 딛고 일어나 건전한 생활인으로서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일은 장애자 재활사업의 최종 목표.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자신과 싸워낸 이들 장애자들이 싸워야할 또 다른 장애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H대 건축과 4년 박모 군 (23)은 4년 전 D고를 졸업, S대 미대에 응시, 학과에서는 극히 우수한 성적을 올렸으나 최종 면접에서 청력 장애 때문에 낙방했다. 그러나 박 군은 좌절하지 않고 다음해에 H대에 합격, 우등생으로 재학 중이며, 졸업 후 건축기사가 될 꿈을 가꾸고 있다.

<정책적 배려 아쉬워>
비단 진학뿐 아니라 취업에 있어서도 장애자에 대한 차별은 마찬가지. 지난 4월 삼육재활원이 국내 1백56개 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고용주들은 "고용하더라도 능률면에서 임금 차를 둘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하며, 장애자 고용을 법률로 정한다 해도 장애자를 고용할 업체는 매우 적은 것 (26%)으로 나타났다.
삼육재활원 민은식 부원장은 "장애자를 위한 복지·재활 시설이 아무리 잘 돼 있어도 이 과정을 마치고 사회로 진출 (또는 복귀) 하려는 장애자를 사회에서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장애자 대책 사업에 드는 숱한 노력과 비용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라며 장애자들에게 「인간적 삶」을 보장해주는 정책적 배려를 아쉬워한다.
장애자의 낙원으로 모든 일에 「장애자 우선」을 내세우는 영국에는 다음과 같은 금언이 있다. "한 사회가 불우한 처지의 사람들을 처우하는 태도는 바로 그 사회가 영위하는 문명의 척도다." <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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