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농구월드컵에 한국 농구협회는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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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지한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세계 최대 농구 축제인 2014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에 참가한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이 외롭게 싸우고 있다. 스페인 본토에서 남쪽으로 약 1000㎞ 떨어진 라스팔마스의 그란 카나리아 섬에서 대회를 치르고 있는 대표팀은 상대하는 팀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과 맞서 싸우면서 세계 정상권과의 수준 차를 실감하고 있다.

 한국은 3일 현재 조별예선 3연패를 기록 중이다. 잇따른 패배에는 이유가 있다. 한국 농구를 총괄하는 대한농구협회가 보이지 않는다. 월드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득이 많은데도 농구협회는 남의 일 보듯 무관심하다.

 농구 월드컵에서 한국은 변방이다. FIBA 랭킹 31위인 한국은 참가국 중 최약체다. 행정력은 더 처참하다. 농구 월드컵 현장에서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사람은 방열(73) 농구협회장 한 명 뿐이다. 농구협회 실무진은 현장에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각 분야 스태프가 총동원된 다른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다.

 방 회장은 이번 대회 선수단장 대행도 맡았다. 당초 선수단장을 맡기로 했던 이경호(64) 농구협회 부회장은 개인 사정을 이유로 단장직을 내놓았다. 사업과 관련한 개인 일정 때문이었다. 대표팀과 한국 취재진을 지원하는 인력 중에 농구협회 소속은 한 명도 없다. 해당 인력은 모두 프로농구 단체인 한국농구연맹(KBL)에서 파견됐다.

 다른 나라와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살리지 못했다. 국제 업무 담당 인력이 농구협회에 있지만 대회에 오지 않았다. 농구협회는 지난 2월 조추첨식에도 한 명도 보내지 않았다. 이 행사에 불참한 본선국은 한국 뿐이었다.

 한국은 본선 24개국 중 유일하게 유니폼 상의에 스폰서 기업 로고가 새겨져 있지 않다. 농구협회를 지원하는 메인 스폰서가 없기 때문이다. 대회 직전 평가전을 하지 않은 사실은 해외 취재진도 의문을 제기할 정도다. 대표팀은 지난 7월 31일 뉴질랜드와 평가전을 가진 뒤 제대로 된 연습경기 한 번 없이 월드컵에 나섰다. 한 호주 기자는 “월드컵 출전 팀이 한 달 전에 최종 평가전을 치렀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TV 생중계가 없어 국내 팬들이 분통을 터트렸지만 농구협회는 묵묵부답이었다.

 남자농구는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3위에 입상해 16년 만에 농구 월드컵 출전권을 따냈다. 초라한 국제 경쟁력과 인기 하락으로 침체의 시기를 보냈던 한국 농구가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농구협회의 근시안적인 대표팀 운영과 헛발질 행정은 여전했다. 지난 5월 프로농구 SK에서 뛰고 있는 애런 헤인즈(33·미국)의 귀화를 추진했다가 3년 연속 해당 국가에 지속적으로 거주해야 한다는 귀화 규정을 뒤늦게 알고 철회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남자농구 대표팀은 월드컵을 치른 뒤 19일 개막하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곧바로 준비한다. 한국의 목표는 금메달이다. 그러나 농구협회의 총체적 부실이 대표팀의 전력을 갉아먹지 않을까 불안하기 짝이 없다. <스페인 라스팔마스>

김지한 문화 ·스포츠 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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