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가(3)|「정책자금」이 너무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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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은행에서 풀려나오는 돈중에는 정책자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나오는 돈들이 그렇지 않은 돈들보다 훨씬 많다.
전체금융기관의 대출금중에서 70%를 차지하고 있다. 미리 쓸데를 정해서 배급되는 돈들이다. 일본의 경우 18.5%(79년)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비중이다. 일반자금을 주로 취급해야될 5개 시중은행의 경우에는 지난해 대출금의 34%가 정책자금으로 풀려나갔고 지시금융의 성격을 띤것까지 합치면 절반 가까운 돈에 꼬리표가 붙었던 셈이다.
수출금융을 비롯해 기계공업육성자금·농수산자금·중소기업특별자금·관광진흥자금등에 이르기까지 20여가지에 달하는 정책자금은 담당자들조차 헛갈릴 정도로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이 모두가 특별히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예외적으로 꼬리표를 붙인 것들이다. 정책적으로 지원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 「특별」한 것들이 보통보다도 많아진 것이 문제다. 운행으로서는 자기네들 스스로가 알아서 대출해 줄수있는 여지가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은행이 정말 자율화되려면 정책자금의 비중부터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는 사람은 정책자금을 줄여주지 않고 은행을 자율적으로 경영하라는 것은 마치 발을 묶어 놓고 뜀박질하라는 것과 다를바 없는 일이라고까지 꼬집는다.
정부도 기회있을 때마다 정책자금의 비중을 줄여 가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줄기는커녕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금은행외 연도별정책자금을 봐도 77년에는 42·7%이던 것이 78년 46·6%, 79년 48%, 80년에는 50%로 늘어났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는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뒷바라지 금융들이 많아졌다.
가령 그로기상태에 빠진 중화학공업분야에 긴급 수혈을 해야하는 운전자금이나 각종 통폐합에 따른 자금지원등이 그나마의 대출한도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형편에서 민영화·자율화를 목전에 둔 시중은행입장에서 정책자금의 비중을 줄여달라는 요구는 당연한 일이다.
정책금융이 많아지면 우선 은행은 기업들에 본의아닌 거짓말을 자주 하게된다. 예컨대 모 은행이 거래기업에 다음달 중으로 5억원의 대출약속을 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달에 갑자기 수출신용장이 많이 들어와 자동적으로 수출금융이 부쩍 늘어났다면 한국은행으로서는 전체 여신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수출금융이 늘어난 만큼 일반대출한도를 줄일것은 뻔한 일이고 결과적으로 그 은행은 기업에 약속한 돈을 대출해 줄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현실을 무시하고 수출금융 같은것을 전혀 없앨수는 없는 노릇이다. 불가피한 것은 어쩔수 없다고 해도 무슨 조치가 나올때마다 「특별」이라는 레테르가 붙어 정책금융을 손쉽게 늘려나가는 식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중소기업은 약자라는 이유로 대기업은 부도의 파급효과가 크다고 해서 구제금융을‥이런 식으로 하다보니 최근에는 중간기업에 대한 「특별자금지원책」이라는 신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책금융에 따른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이나 인플레 조장적인 면등은 접어놓더라도 어려운 결단을 내려 일단 은행을 자율화시키기로 했다면 그들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당국자들도 정책금융문제를 해결할 수있는 방안은 정부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실현 가능성을 말한다.
가령 시중은행이 취급하고있는 정책금융중에서 수출금융등을 제외하고는 대폭 특수은행에 넘겨 특수은행으로 하여금 정책금융을 전담케 한다는 것이다.
부족한 재원은 증대를 통해서 충당하되 증자에 필요한 돈을 정부가 시중은행을 민영화시키면서 주식을 판돈으로 메워주면 된다.
일반대출금리와 현저한 격차를 보이고있는 정책금융금리도 한번에 올려버리면 부작용이 클테니까 일반자금 금리를 올릴때는 같이 올리고 내릴때는 그대로 묶어놓기로 한다면 격차가 자연스럽게 좁혀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이 모두가 정부의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봐야할 것 같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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