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이나 가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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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해외유학의 문이 넓어지면서 어느새 우려했던 문제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대학 재학생은 물론 재수생과 고교 재학생들 사이에서도 유학지망 붐이 광범하게 일고 있다. 어떤 학교에선 설레는 분위기마저 엿볼수 있다고 하며 미국대학 한국분교를 차렸다는 유학 사기범까지도 나타났다.
이것은 물론 그동안 극히 제한되어왔던 유학기회가 모처럼 넓어짐으로써 야기되는 현상으로 지나치게 우려하는 것은 성급한 면도 없진 않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해 두기에는 어딘가 위험한 증상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미리 주의를 환기해 두는 것도 좋을 것같다.
유학을 지망하는 사람들이 주로 대학생이거나 고교성적 20%이내의 재수생과 고교재학생이며 이들 대부분의 가정형편이 좋은 편이라서 유학을 타진하는데 외견상 무리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유학을 꿈꾸는 동기가 우선 건전하지 않은데 우리의 우려가 따른다. 국내명문대학 입학이 몹시 어려운데다가 입학하고 나서도 졸업정원제 실시에 따른 중도탈락의 위험이 크다는 것이 유학지망의 숨겨진 동기인 것같다.
또 우리사회의 유별난 외국선망·유학선호의 기풍도 작용하는 면이 있다. 뿐더러 유학을 통해 학위를 얻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외국을 구경하며 외국어습득의 현장경험은 할수있다는등, 현실적인 이점도 유학붐을 조장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이같은 유학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유학은 붐을 조성 할만큼 무조건 조장될 성질의 것이 아님도 알아야겠다.
우선 유학이 뼈를 깎듯 어려운 학구의 길이요, 결코 여행이나 산책을 떠나듯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외국에 나가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해서 몇년 지나 석사나 박사학위를 얻어 귀국하게되면 특별대우를 향수할수 있을 것이라고 지나치게 단순하고 막역한 생각을 하는 사람조차 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거리가 멀다. 외국어의 습득에서부터 곤란에 직면하는 유학생은 엄청난 양의 교재를 거의 매일 독파해야 비로소 강의를 받을수 있다. 이런 외국대학의 보편적인 교육과정에서 낙오하여 좌절을 겪는 경우가 허다함을 알아야 한다. 20%의 탈락이 문제가 아니다.
종래 유학생의 경우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 자격시험에 합격한 비교적 우수한 편의 사람들이었다면 유학 개방시대의 유학생들이 어학의 장벽에 좌절하고 강의 진도에 낙오하면서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훨씬 많아지리란 것은 지금부터 넉넉히 예상할수 있다.
그것은 중공 유학생들의 경우에서도 볼수 있다. 미국유학의 길이 열린 후 중공의 많은 사비유학생이 미국에 몰려왔으나 언어습득 단계에서 낙오하여 귀국할 것인가 유학을 계속할 것인가의 딜레머에 빠진 끝에 자살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를 외국잡지에서 본일이 있었다.
국내대학에서 공부할 경우엔 이같은 사태는 적어도 피할수 있다. 게다가 외국유학의 비용은 또 얼마나 무거운가.
비록 경제적 형편이 닿아서 유학을 간다고 해도 소기의 성과를 이룰수 없다면 개인적으로도 대단한 좌절일뿐 아니라 국가적인 낭비도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국세에 걸맞지 않는 외화의 낭비인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유학에 뜻을 둔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모름지기 먼저 이같은 문제를 두루 검토하고 난 연후에 유학을 추진해야 하겠다.
들뜬 기분에 무작정 떠나는 유학은 개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결코 득될 것이 없다.
어떤 제도든 그 자체가 아무리 이상적이라고 해도 이상적인 경과를 기대할수 없다면 결코 방치만 할 수는 없다. 유학개방 시대일수록 옥석을 가리는 보완의 정책이 있어야할 것이다. 『유학이나 가볼까…』하는 풍조는 유학개방의 근본취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사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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