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키웠던 '대한민국 음악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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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홍난파.김성태.현제명이 빠진 한국서양음악사를 생각할 수 있을까. 박시춘.남인수 없는 20세기 한국 대중음악사 서술은 가능한가. 국악계의 대부로 꼽히는 김기수는 또 어떤가. 일제 강점기 친일 행적은 음악인들의 평가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는 논쟁거리다.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조문기) 주최로 21~30일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1층 전시실에서 열리는 '친일 음악의 진상-반성과 화해를 위한 기획전시'가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예컨대 광복절.삼일절.개천절 기념가를 작곡한 김성태, 국립경찰가를 작곡한 현제명, 제헌절 노래를 작곡한 박태준 등 한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친일 음악활동 실태가 전시장에 펼쳐져 있다.

이번 행사는 최근 일부 지역에서 진행 중인 해당 지역 출신(또는 활동 연고) 음악인의 추모 기념사업이 주인공의 친일 경력으로 인해 마찰을 빚고 있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은 "해방 이후의 활동만 알려진 친일 음악가들에 대한 기념사업이 반성없이 전개되는 것을 보고 이래선 안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전시가 친일 음악인들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시회 부제처럼 반성과 화해를 통해 민족 구성원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정 기준은 해방 이후 클래식.대중음악 분야에서 영향이 지대하면서도 친일에 대한 자발성.지속성 면에서 정도가 심각했던 경우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대표적 친일음악 단체로 꼽히는 '경성 후생실내악단'과 '경성 음악연구원'에서의 활동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당시 전시체제 아래 징병제를 격찬하고 전쟁 음악을 보급하며, 나아가 일본 천황제를 옹호한 것이 친일 활동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해방 전인 1941년에 작고했기에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기리는 음악을 작곡하진 않았지만 친일 음악가로 분류되는 홍난파의 일제 시기 활동도 공개됐다. 그리고 '어머니의 은혜'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 이흥렬과 '봉선화'를 부른 일제 시기 최고의 소프라노 김천애도 눈길을 끈다.

대중음악과 국악계의 친일 활동도 공개됐다. 남인수.손목인.박시춘.백년설 등은 일제 시기는 물론 해방 이후에도 큰 인기를 끌었던 대중음악계의 거목들이다.

특히 친일 음악가의 악보.레코드.음악교과서 실물 전시와 함께, 그들이 만들고 부른 노래들을 첨단 멀티미디어 장비를 동원해 실제로 영상과 함께 듣고 볼 수 있게 했다.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일제 시기 대표적 가수들이 부르는 행진곡 군가풍의 노래 수십곡이 차례대로 울려퍼진다.

이번 전시회에서 공개하는 대표적 희귀 자료로는 '황화만년지곡( 皇化萬年之曲)'의 악보를 들 수 있다. 한국 국악계의 대부로 꼽히는 김기수가 작곡하고, 일제시기 대표적 친일 학자인 이능화가 가사를 써 일본 천황에 바친 이 '천황 찬미가'는 국내 최초 국악 창작곡이다.

숙명여대 이만열(한국사)교수는 "친일 음악가들이 일제 강점기에 남겼던 행적은 그들의 음악에 친숙했던 많은 사람에게는 인정하기 싫은 것이지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전시회 입장료는 무료다.

배영대 기자

*** 바로잡습니다

4월 22일자 20면 '친일 음악가 전시회'기사에서 광복절.삼일절 노래의 작곡자는 김성태가 아니라 각각 윤용하.박태현이기에 바로잡습니다. 전시회를 주관한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착오를 인정하며 윤용하.박태현은 친일 문제와 관련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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