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엑스포 흥행 위해 '표 팔이' 동원된 주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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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도청이 개최하는 행사에 주민까지 ‘표 팔이’로 내몰면 안 되죠”. 충북 청주시 용암동 주민자치위원회 소속 구모(55)씨는 최근 350만원 상당의 오송국제바이오산업엑스포 입장권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이 마을 동장이 주관한 회의에서 “행사 성공을 위해 관람객 유치가 관건이다.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도와달라”며 입장권 판매를 부탁 받았지만 마땅히 팔 곳이 없어서다. 구씨는 “지난해 화장품박람회 때도 공무원 부탁으로 표를 강매하다시피 해 주민 원성이 자자했다. 입장권 판매로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충북도가 다음 달 대규모 국제행사를 앞두고 일선 주민자치센터까지 입장권 판매량을 할당하면서 주민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생명, 아름다움을 여는 비밀’을 주제로 충북 오송 일원에서 26일부터 12일간 열리는 오송국제바이오산업엑스포의 관람객 유치 목표는 70만 명. 엑스포조직위원회는 엑스포 흥행 등을 이유로 입장권 사전 판매 목표를 관람객 유치 목표의 57.1%(50만장)로 정했다. 입장권 1장 가격은 1만원(일반인 기준)이며 사전 구매하면 20% 할인해 준다.

 입장권 사전 판매는 대부분 지자체가 맡고 있다. 충북도 본청이 20만 장, 청주시 10만 장, 10개 시·군에 8만 장, 입장권 판매대행사인 농협충북본부가 12만 장을 팔기로 했다. 이 가운데 시·군에 할당된 입장권은 각 동 별로 구성돼 있는 주민자치위원회, 통장협의회 등 직능단체장과 위원·주민에게 전가돼 강매 논란이 일고 있다. 조직위가 기초자치단체에 입장권을 할당하면 하부 조직인 동 주민센터→동별 주민자치위원회 등 10여 개의 직능단체→일반 주민에게 순차적으로 배분되는 구조다.

청주시 율량동 자유총연맹 소속 박모(57·여)씨는 “체면 때문에 외면할 수는 없고 동장 얼굴을 봐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입장권을 사고 있다”며 “할당 받은 입장권을 다른 사람에게 팔기보다는 위원들끼리 돈을 걷어 사는 식”이라고 말했다. 일부 자연부락에서는 마을발전 기금을 걷어 할당된 입장권을 사기도 한다. 이렇게 구매된 입장권을 헐값에 다른 사람에게 되파는 사례도 있다.

 충북도 본청 소속 공무원도 울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실·국당 500~1000장까지 배분돼 직원들이 입장권을 팔고 있지만 판로가 여의치 않다”며 “행사 전까지 업무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럴 바엔 내가 사고 털어내겠다”는 말도 공공연하게 들리고 있다. 조직위가 입장권 사전 판매에 전방위로 나서고 있지만 지난 달까지 입장권 판매 실적은 관람객 유치 목표의 30%(약 20만장)로 저조하다. 티몬·옥션·G마켓·스마틱스 등 온라인마켓 예매는 5%도 채 되지 않는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이선영 사무처장은 “지자체가 주관하는 축제나 국제행사 때마다 입장권 강매가 관례처럼 굳어져 주민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며 “행사 성공 여부를 관람객 수로 가늠하는 평가지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재호 엑스포조직위 본부장은 “입장권 판매 부담을 덜기 위해 이번 엑스포는 작년 뷰티박람회 사전 판매량의 70% 수준으로 낮췄다” 고 말했다.

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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