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찾아가기] 변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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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선망하는 직업을 생생하게 소개하는 ‘진로 찾아가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다양한 직업 현장을 찾아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또 그 직업을 갖기 위해서 어떤 길이 있는지 등 구체적인 정보를 중고생 눈높이에 맞춰 알려드립니다. 14회는 변리사입니다.

‘발명 자본주의’란 말이 있다. 부동산·주식뿐 아니라 아이디어·특허 등 지식자산 투자가 돈이 된다는 말이다. 2011년 시작된 삼성·애플 간 특허소송을 보면 지식자산이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녔는지 알 수 있다. 애플이 미 캘리포니아 법원에 특허 침해로 삼성을 제소한 이후 한국·일본·독일·네덜란드·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호주 등 9개국에서 30여 건의 소송전으로 확대(양사가 지난달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는 서로 소를 취하하기로 합의해, 현재 미국에서만 소송 중)됐다.

올 3월 미 캘리포니아 법원은 삼성이 애플에게 9억3000만 달러(한화 약 9500억원)를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내렸다. 특허의 시장 가치가 얼마나 큰지 대중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 셈이다. 이같은 특허소송의 향배에 중요한 인물이 변리사다. 변리사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변리사가 되기 위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는지 알아봤다.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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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권 대행과 개발자 권익 보호

지식재산권은 크게 특허·실용신안·상표·디자인 등 산업재산권과 저작권 두 가지로 나뉜다. 산업재산권은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 개발자에게 일정 기간 사용 독점권을 줘 개발에 따른 노력과 공로를 보상해주는 제도다. 다만 따로 등록하지 않아도 창작과 동시에 권리를 인정받는 저작권과 달리 특허청에 등록해야만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

 변리사는 산업재산권을 인정받을 수 있게 돕는 사람이다. 기업·개인 등 의뢰인을 대신해 특허권을 받아내는 게 주 역할이지만 의뢰인의 산업재산권이 침해당했을 때, 또는 침해했다고 공격받았을 때는 변호사와 함께 분쟁소송까지 책임진다. 법정에서 기술 독창성이나 침해 여부에 대해 이유와 근거를 들어 논증을 펼쳐야 한다. 이처럼 기술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관련 분야 전문지식까지 두루 갖춰야 하기에 아무래도 이공계 출신이 많다. 법률 지식은 기본이다.

 변리사 안에서도 전문 분야가 있다. 크게 특허·실용신안과 상표, 디자인 전문 변리사로 나뉘는데, 특허·실용신안 안에서도 전기전자·화학·바이오·의약 등 세부분야로 특화한다. 유미특허법인 이원일(44) 변리사는 “특허·실용신안쪽은 이공계 전공 지식이 많이 필요하고 디자인 역시 제품 설계도면을 주로 다루기에 대부분 이공계 출신이지만 상표 전문 변리사는 인문계가 꽤 있다”고 설명했다.

 변리사 업무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특허권 등 산업재산권 출원·등록 업무다. 다시 말해 특허권 취득이 가장 비중이 크다. 법률자문과 분쟁소송은 20~30% 정도다. 개발자로부터 특허권 의뢰가 오면 유사 기술 존재 여부나 다른 특허에 대한 침해 여부 등을 따져 특허 가능성을 검토한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의 유사 특허 사례를 모두 분석한다. 산업재산권은 기본적으로 국제주의를 따르기 때문에 해외에서 동일한 기술이 특허로 인정받았다면 국내에서 인정 받을 수 없다. 해오름국제특허법률사무소 오세중(56) 대표변리사는 “특히 상표는 선행조사를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며 ”해외에 같은 이름의 제품이 있다면 해당 기업의 글로벌 진출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지식은 기본…논증·설득 능력 중요

 산업재산권을 인정받으려면 몇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특허청에서 8년간 특허 심사관으로 근무했던 인하대 지선구 지식재산전담교수는 “특허권은 신규성과 진보성이 중요하다”며 “진보성을 인정 받지 못해 탈락하는 경우가 85%에 달한다”고 말했다. 신규성이란 새로운 기술인지 여부, 진보성은 기술적으로 얼마나 향상됐는가를 말한다. 지 교수는 “해당 기술과 아이디어가 기존의 것과 비교해 어떤 점에서, 얼마나 발전된 것인지를 근거를 들어 증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변리사는 “여기서 변리사의 능력이 나온다”고 했다. “개발자는 어려운 전문용어와 공식으로 진보성을 설명하려 하죠. 개발자 언어와 일반인 언어가 다르다는 겁니다. 변리사는 기술자의 어려운 말을 판사나 심사관이 이해할 수 있는 쉽고 간결한 언어로 바꿔서 설명해야 합니다.” 그는 변리사를 통역·번역사에 비유했다. 다만 통역 대상이 언어가 아니라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러니 변리사가 기술의 독창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권리 보호의 폭과 깊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똑같은 기술도 변리사의 실력과 노력에 따라 인정받는 범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변리사는 의자를 예로 들었다. ‘사각형의 나무로 된 밑판과 네 개의 다리, 한 변에 직각으로 부착된 등받이’라는 표현과 ‘엉덩이를 걸치기 위한 밑판과 공중에 떠받치는 다리, 일부분에 부착된 등받이’라는 설명 중 어느 쪽이 의뢰인의 권리를 더 폭 넓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정답은 후자다. ‘사각형의 나무로 된 밑판’이라고만 설명해 특허를 신청했다치자. 이 경우 밑판만 원 모양으로 만들면 손쉽게 복제품을 만들 수 있다. 기술 독창성에 대한 논증은 깔끔하고 간결해야 한다. 표현이 너무 구체적이어도, 너무 엉성해도 안된다. 표현과 묘사가 구체적일수록 특허받기는 쉽지만 권리 범위는 좁아진다. 허울뿐인 특허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변리사는 “기술의 핵심 특징은 짚어내면서도 의뢰인의 권리를 폭 넓게 보장받을 수 있는 법률적 방안을 찾고 기술에 대한 설명을 가다듬어야 한다”며 “기술에 대한 해석과 독창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변리사는 심사관이나 판사와 논리 싸움을 한다. 오 변리사는 한 화장품 회사의 상표등록 건을 떠올렸다. 의뢰인이 원했던 화장품 브랜드 이름이 등록거절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향료 분야에 이미 같은 이름이 있다는 것이었다. 화장품과 향료는 다른 영역인데도 유사성 문제에 걸린거다. 화장품과 향료가 사업적 측면뿐 아니라 과학적·사회적인 측면에서 전혀 다른 영역이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오 변리사는 향료 관련 논문을 찾아 연구하고 새로 근거를 붙여 다시 심사를 청구했다. 특허청에선 결국 화장품과 향료가 다른 분야임을 인정, 상표등록을 허가했다. 오 변리사는 “광범위한 자료를 조사·분석해 새로운 해석을 도출해야 한다”며 “이공계 지식뿐 아니라 논리력·표현력·문장력 등 문과적 소양도 중요하다”고 했다.

 어학능력도 필수다. 미국·일본 등의 선행기술을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는 물론 일본어도 독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변리사들은 “앞으로 중국이 특허 대국으로 급성장할 것”이라며 “앞으로는 중국어 실력도 필수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내서도 특허권 시장 생겨…전망 밝아

유미특허법인 김범수 변리사가 송도의 한 기업 연구원을 대상으로 특허 자문을 하고 있다. 변리사는 특허 출원·등록과 특허소송뿐 아니라 기업 기술개발자문과 특허권 러이선스 사업까지 진행한다. [김경록 기자]

 특허 출원 건수와 침해소송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삼성-애플간 특허소송을 계기로 국내 기업들의 특허권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뀌고 있다. 단순 방어를 넘어 적극적으로 국제특허를 시도하고 특허권을 사들이며 공세로 전환하는 추세다. 삼성은 애플과 소송을 겪으며 변리사 200여 명을 채용하기도 했다. 특허사무소에서 변리사로 활동하다 2006년 KT에 입사한 최지명(39) 지식재산권담당 팀장은 “특허 대국인 미국과 비교하면 걸음마 단계지만 특허권을 사고 파는 특허권 시장도 형성되기 시작했다”며 “기업들이 특허침해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변리사 채용을 늘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런 변화에 맞춰 변리사 업무 범위도 확장되고 있다. 출원·등록과 특허소송뿐 아니라 기술개발 자문은 물론 특허권 라이선스 사업까지 넓어지고 있다. 변리사가 기업의 기술개발 초창기부터 참여해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연구개발 방향을 이끄는 거다. 최 팀장은 “어떤 것이 특허가 될 수 있는지 방향을 알고 기술개발을 하면 연구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며 “변리사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 변리사는 “앞으로 산업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더 높아지고 특허권 시장은 확대될 것”이라며 “심지어 소리·냄새·색채도 브랜드 가치로 인정받아 상표로 등록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미 영화제작사 MGM의 사자 울음소리와 20세기 폭스사의 로고음악이다. 두 소리 모두 미 특허청에 소리상표로 등록돼 있다. 그는 “이젠 특정 소리가 브랜드 가치를 대표한다는 것까지 논리적으로 입증하고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로 전문가가 본 이 직업

법률·기술 어우러진 융합형 직업…이공계 출신 많아

이랑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 전임연구원

변리사는 하는 일보다 연봉 때문에 화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연봉이 높다니 그제서야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을 갖는다는 얘기다. 특히 최근 기업 간 특허전쟁으로 더 주목받지만 이미 100여 년 전 라이트 형제가 ‘나는 기계’로 특허출원을 할 때 변리사를 고용할 정도로 오래된 직업이다.

 변리사는 융합적 인재가 필요한 대표 직업이다. 법학과 이학적 지식이 잘 어우러져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법률문제를 조언하고 소송하는 변호사 같은 일을 한다. 법률문제 중에서도 특허나 발명·디자인·상표 등에 관한 권리취득이 주된 업무이므로 컴퓨터공학·기계공학·생명공학·전자공학·환경공학 등 공학이나 자연계열 출신이 많다. 자격시험은 특허청에서 주관한다.

 변리사를 미리 경험해보고 싶다면 국가법령정보센터의 『특허법』전문을 정독할 것을 권한다. 변리사의 모든 업무는 관련법에 의거해 수행하기 때문에 법과 친해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인터넷 등을 통해 현직 변리사가 특허 절차에 대해 정리한 사례를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앞으로는 국제특허와 관련한 업무가 늘어날 전망이므로 법과 이학적 지식 외에 외국어 실력과 국제감각을 갖추는 것도 유리하다.

이랑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 전임연구원

직업 관련 정보는 교육부 커리어넷(career.go.kr)과 고용노동부 워크넷(work.go.kr)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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