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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근로청소년의 하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서울수유동 A새마울공장에 다니는 김모양(19)은 매일새벽 6시에 일어난다. 어머니는 벌써 공사장으로 나갔다. 밥은 지난밤에 해놓았지만 청소원인 아버지와 학교에 다니는 동생 셋을 위해 국물데워 아침식사를 하고 치우려면 이시간에 일어나도 바쁘다. 7시반 집을 나서 걸으면 8시까진 공장에 닿는다. 이때부터 저녁7시반까지 줄곧 자봉틀과 씨름을 해야한다. 8시간 근무라지만 1시부터 40분간의 점심시간을 빼더라도 11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어제 작업을 한 탓인지 오늘은 하루쯤 공장을 쉬었으면 싶을 정도로 몸이 무겁다. 이런 날은 출근길이 까닭없이 불안하고 무언가 걱정스러운 일이 있을것 같은 느낌이다.

<자봉틀과 줄곧씨름>
그러나 하루를 빠지면 3일분 일당을 제하니 무리를 해서라도 공장엔 나가야만 한다. .
김양이 하루중 가장 견디기 어려울때는 점심시간직후와 퇴근시간전. 점심을 먹고 1시간쯤 지나면눈이 자꾸 감긴다.
밖에나가 바람이라도 씌고 싶지만 웃사람 눈치보기가 싫어 꾹 참는다.
화장실도 오전과 오후 두차례만가기로 오래전부터 작정했다고 그렇지만 퇴근하기 1시간전부터 벽시계를 홀끗홀끗 바라보는 습관은 어쩔수 없다.
김양의 한달임금은 6만3천원정도. 몽땅 어머니에게 내놓고 용돈으로 5천원가량을 타쓴다. 김양은중학교2학년을 중퇴했다. 공장에 다니던 언니가 시집을 가버리자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와 근무한지 채 1년이 안된다.
김양은 열심히 노력하면 동생들학업을 계속시키고 자신도 잘 살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국민학교 4학년인 막내가 고등학교만이라도 마치도록 하려면 앞으로 10년, 「30살까지는 공장에 다녀야 될것』 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때 김양의 심정은 어두워질수밖에 없다.
―정군 (19) 의 직장은 청계천 근처의 영세한 금속가공공장 종업원이라곤 기술자와 정군 단둘뿐이다.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에 손가락이 뼈져나온 면장갑을 낀채 하루종일망치질을 한다.
바깥날씨와는 관계없이 항상 온몸은 땀에 젖고, 오후가 되면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 정도로 허리가 뻐근하다. 아무데나 벌렁 눕고싶지만『젊었을때 고생은 돈을 주고서라도 한다』는 옛말을 상기하곤 한다.
그래도 오늘처럼 주인아저씨가 일욜 일찍 끝내고 귀가길에 우동 한그릇이라도 사주는 날이면 세장살맛이 나는것 같다. 버스에서는 먼저 내리면서 차비도 내줬다. 밤11시. 정군은 오랜만에 책을 뒤적이다 일기한끝에 이렇게 적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비록 고달프지만 나에겐 젊음과 내일의 릐망이 있다. 』
우리나라의 근로자수는 5인이상사업체의 경우 3백55만명. 청소년근로자는 이가운데 1백36만명에 달하고 18세미만의 나이어린 근로자만도 9만여명을 헤아리고 있다(노동부· 사업체노동실태조사보고서) .
60연대의 산업화·도시화 현상은 수많은 농촌의 청소년들을 공장으로 도시로 불러들였다. 서울의첨계천변 판자집, 산등성이를 메웠던 무허가주택은 이 현상의 상징처럼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그렇다고 이농의 발걸음이 지금이라고 멈춰진 것은 아니다. 근로청소년의80.5%가 읍소재지 이하의 농촌출신이라는것(한국여성유권자연맹·여성근로자실태조사·80년)은 이것을 증명한다.

<80.5%가 농촌츨신>
같은 청소년이라도 근로청소년의세계는 다르다. 대부분 청소년들의 활동의 장이 학교와 가정이라면그들에게는 직장이 무대가 된다. 남보다 일찍 생존의 어려움을 터득했지만 교육의 기회와 훗날 아름답게 추억될 어린시절을 잃었다. 그렇다고 얻고 잃은 모든것이 등가원칙에따라 교환됐다고 말할수도 없다. 근로청소년을 보는 사회의 인식은 보호와 육성의 대상이기 앞서 냉대와 비하의 눈길이 따라다니고 사회의 관심의 중심부에들어서 본 적이 없다.
꿈을 키워도 혼자 키우고 꿈을 잃어도 혼자 잃는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을 보며 살아가는 가슴」이있어 꼭 외롭고 괴롭지만은 않다.
(전략)
피로한 몸으로도/하늘을 먹고사는 나의 가슴은/노래를 부르며 시를. 쓰며/나를 가꾼다.
흡족히 약속된 내일은 아니지만/하늘을 보며 사는 나의 가슴엔/백조가 날고 구름이 흐르고/노올이 곱게 물든다.
뿌듯이 느끼는 보람은 없어도/하늘을 보며 사는 나의 가슴엔/노래가 있고 시가 있고/향내가 있다.(황명심·경일산업사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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