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 총재 울포위츠 발탁 부시, 네오콘 신뢰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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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6일 자신이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한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과 환담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

세계은행은 부자 나라들이 낸 돈으로 가난한 나라의 발전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국제기구다. 업무 성격상 금융이나 경제전문가들이 수장을 맡아 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런 세계은행 총재에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지명했다. 이라크전쟁을 기획한 만큼 '빈곤과의 전쟁'도 잘 이끌어 갈 것으로 본 것 같다.

울포위츠는 지명 직후 "세계은행은 빈곤 문제를 해소하는 곳이고, 나는 앞으로 여러 회원국으로 구성된 이사회의 뜻을 받들어 이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대체로 그에 대해 적임자가 아니라는 쪽이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 등에서 그동안 맡은 직책으로 볼 때 그는 국제정치나 국방 전문가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도 이번 인사는 유럽에서 논란을 야기할 것으로 내다봤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인선에 대해 세계은행 내 유럽 간부들이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부시 대통령은 울포위츠 카드를 통해 바깥 세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식 가치 확산을 주도하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을 여전히 크게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 7일 유엔대사에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이자 강경파인 존 볼턴을 지명한 것도 그랬다.

울포위츠가 세계은행을 이끌 경우 개도국 지원 기준에 정치적 색채가 끼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일고 있다. 네오콘 총재답게 미국 정책에 잘 호응하는 나라에 더 많은 당근을 주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CNN은 유럽 국가들이 과거 로버트 맥나마라 총재 시절에도 개도국의 필요보다는 미국의 판단에 따라 자금을 지원하는 일이 있었다며 울포위츠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슬람권에 대한 그의 편협된 시각도 국제기구의 장이 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그는 특히 중동지역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확산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는데, 이런 신념이 세은 총재의 직무 수행에도 얼마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부시 대통령은 울포위츠 지명 직후 프랑스.독일.일본 등 주요국 정상에게 전화를 걸어 지지를 당부했다. 그러나 세계은행 이사회는 그의 인선을 놓고 한참 논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궁에선 긍정적인 반응이 전해졌지만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외무장관은 "우리는 그를 몇몇 총재 후보의 하나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울포위츠의 지명 소식을 들은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국제 개발 분야에서 경험 많은 다른 후보를 찾아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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