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하고도 완벽한 「음의 건축물」|필라델피아 오키스트러 연주를 듣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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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앙일보사와 한국 문화 예술 진흥원의 공동주최로 이루어진 필라델피아 교향악단 내한공연이 제6회 대한민국 음악제 일정의 하나로 3일간(27∼29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베풀어졌다.
첫날 공연소감에서 필자는 마법이 깃든 오먼디의 지휘봉, 영원히 때묻지 않는 「오먼디 사운드」 등의 어휘를 소개한바 있다. 둘째와 세째 날의 연주를 들으면서도 나는 같은 어휘를 몇 차례 되뇌지 않을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80세를 넘긴 나이는 양로원에 가있어도 남을 고령이다. 그런데 「오먼디」의 음악적 피부는 만지면 곧 터질 듯한 젊음의 탄력성을 지니고 있다. 10곡이 넘는 대곡들을 완전 암보로 3일간 계속 지휘할 수 있는 스태미너 그 자체에 우리는 벌써 압도된다. 음악외적인 측면에서도 「오먼디」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진다는 이야기다.
둘째 날의 『운명』교향악에서나 셋째날의 『영웅』교향악에서나 간에, 「오먼디」의 지휘봉이 토해내는 수많은 음군의 융합체인 거대한 「음의 건축물」은 완벽한 형식미에 담기면서 위대한 예술적 시간성을 창조해 내고 있다.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있을 연주회장 밖에서 흐르고 있는 물리적 시간을 상상하면 1초가 아쉽다. 1초가 10년의 시간으로도 둔감할 수 있을 예술적 시간이 유지될 수 있다면 유지될수록 좋겠다는 느낌이었다.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라든가 또 「라벨」의 『라발즈』가 마련하는 세계는 음이 매체가 되는 진귀한 그림의 세계다.
이번 공연에서 빼놓으려야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문자 그대로 국제적 수준 급의 바이얼리니스트이며, 「오먼디」의 말대로 한국의 자랑이자 세계의 자랑인 김영욱의 연주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의 연주에서 나는 언제나 전율을 느낀다. 이번 「생상스」연주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교향악단 단원들이 오히려 무색해질 이만큼 그의 연주는 훌륭했다. 긴 소리 짧은소리 할 것이 없다. 김영욱 음악은 바이얼린 음악의 한 고향이라고 말해버리면 그만 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강숙<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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