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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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방글라데시에 쿠데타가 일어났다.「지아우르·라만」대통령이 피살되고 정부군과 쿠데타군이 대치중이다. 아직 그 성패는 미상.
단지 방글라데시라는 나라의 기구한 운명과 함께 정치의 무상함이 유별나게 드러난 몇개 드라머가 흥미롭다.
첫째 이번 사태가 「하시나」라는 한 30대 여인의 귀국과 함께 일어난 점이다. 「하시나」는 6년 쿠데타 때 몰살한 전대통령 「무지부르· 라만」가족의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무지부르·라만」의 말로 해외여항중 이 참변을 피하고 6년간 인도에서 망명생활을 했다.그녀는 지난 2월 제1야당 아와미연맹의 총재로 추대되어 이번에 귀국한 것이다. 아와미연맹은 그의 아버지 「라만」이 창설한 방글라데시독립의 주부단체다. 그녀가 공항에 도착했을 때 환영인파는 수십만이었고 그녀는『아바지의 원수를 기필코 갚아 그의 위업을 계승한다』고 선언했었다.
이번 사태의 주동자 「만주르·아메드」소장과「하시나」와의 관련여부는 아직 모른다.
둘째, 치타공의 인연이다. 「지아우르·라만」대통령은 이번에 방글라데시 제2도시 치타공의 영빈관에서 잠자는 도중 피살되었다.
치타공은 10년전인 71년 동파키스탄군 소령이었던「지아우르·라만」자신이 파키스탄에 반기를 들고 방송국을 점령하고 독립을 선포했던 곳이다.
셋째, 두「라만」은 결코 민주적 지도자는 아니었고 똑같이 비명 횡사했다.
「무지부르·라만」은 8회나 투옥된 경력을 가지고 옥중에서 독립을 쟁취한 불굴의 투사였다. 그때문에「국부」로 추앙되기도 했다. 그러나 막판에 『현재의 정치·경제위기 아래선 자유민주주의가 시행될수 없다』고 선언, 의회민주주의를 폐기하그 독재체제를 구축했었다.
75년 「무지부르·라만」을 무너뜨린 군정쿠데타를 다시 역쿠데타로 쳐엎고 집권한「지아우르·라만」은 그동안 많은 구정치인을 몰아내고 강력한 정치로 민중의 불만을 억눌러왔다. 억압엔 늘 반발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 쿠뎨타도 그반발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 괴로운 것은 방글라데시와 그 국민뿐이다. 8천5백만인구의 1인당 GNP는 백달러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영국직민지에서 인도가 독립하고 47년 파키스탄이 독립했지만, 동서로 나뉜 파키스탄 사이에도 정치·경제적 격차때문에 대립이 심각, 결국 동쪽이 분리됐다.
건국10년을 맞은 방글라데시가 아직도 정치안정을 추구하지 못하는 원인은 한마디로 가난이다. 가난한 사회는 부패하기 쉽고 불안과 경제적 침체가 근원적으로는 쿠데타의 온상이 되고 만다. 이런 점에선 이나라의 앞날은 어둡기만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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