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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독립국 지위' 첫 거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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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러시아에서 열린 국제청소년 포럼에 참석해 지구본을 선물로 받았다. 그는 “(서방이) 러시아와는 장난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젤리거 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해 국가 지위 부여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림 공화국의 러시아 합병과 더불어 동부 지역 반군의 무장 투쟁 개시 후 푸틴이 공식적으로 이 지역 독립을 거론한 건 처음이다.

 인테르팍스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푸틴은 31일(현지시간) 러시아 TV방송 ‘제1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 주민의 법적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 지역의 ‘국가 지위’에 대한 실질적 논의를 즉각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려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며 “그들의 합법적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곳에는 우리의 친척과 친구들이 살고 있으며 너무나 밀접하게 서로 연관돼 있다”며 “러시아는 그곳 사람들을 마구 총살하는 일에 무관심할 수 없다”고 우크라이나 동부에 대한 러시아의 ‘관심’을 변호했다.

 푸틴은 지난 3월 크림 공화국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하려 할 때도 이 지역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러시아계 주민들의 권익과 안전 보장을 내세우며 옹호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군-반군 간 교전 사태에 대해선 주로 양측 간 대화를 주장해 왔다. 독립국 지위를 부여하자는 제안은 처음인 셈이다.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6월 동부 지역에 행정권과 예산권을 부여하는 일정 수준의 자치를 제안했다. 하지만 반군은 정부군이 무력 사용을 먼저 중단해야 한다며 대화를 거부한 바 있다.

 인터뷰가 보도된 직후 크렘린은 수위 조절에 나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대변인은 “대통령의 발언은 동부 지역 분리주의 반군들이 참여하는 협상이 서둘러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며 “동부 반군이 주장하는 ‘주권 부여’를 염두에 둔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크라이나만이 이 지역 주민들의 이해를 고려하는 합의를 할 수 있으며 그런 식으로만 정치적 해결이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상황은 최근 더욱 험악해졌다.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남부 소도시 노보아조프스크를 점령한 분리주의 반군 수백 명은 전략적 항구도시 마리우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마리우폴은 러시아와 크림 반도를 잇는 지역 전부를 장악하기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적어도 1000명의 러시아군과 러시아 탱크가 동원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러시아가 사태에 명백히 개입하고 있다고 보고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산하 최소 1만 병력으로 구성된 신속대응군을 창설키로 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헤르만 반롬푀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31일 “긴급 예비작업을 통해 일주일 안에 대러시아 추가 제재안을 제시할 것을 EU 집행위원회에 요청한다”고 강수를 뒀다.

  이런 압박에도 아랑곳없이 푸틴은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핵보유국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건 말장난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라고 경고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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