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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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식용유 대표 브랜드인 ‘해표’를 키워낸 신명수(사진) 전 신동방그룹 회장이 숙환으로 지난달 30일 타계했다. 73세.

 부산 출신인 신 전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컬럼비아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부친이 경영하던 동방유량에 1967년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신 전 회장은 부친에게서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 당시 동물성 위주이던 식용유 시장에 100% 대두로 만든 해표 콩기름을 출시해 국민 식생활 향상에 기여했다. 이후 그는 식용유 시장의 고급화 추세에 발맞춰 올리브유·포도씨유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식용유의 웰빙 트렌드를 주도했다. 신 전 회장은 96년에는 회사 이름을 신동방으로 바꾸고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그는 이때부터 고객위주·사회공헌 경영을 앞세우며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신동방은 신 전 회장의 지휘 아래 증권과 유통업종에 잇따라 진출하며 식품에 머물던 사업 분야를 크게 확대하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97년 무렵 추진한 미도파에 대한 인수합병이 무산되면서 신동방은 위기에 몰렸다. 미도파는 대농그룹이 운영했던 백화점이다.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지원을 받는 대농그룹의 경영권 방어가 성공하면서 신동방은 자금난에 빠졌다. 돈을 잔뜩 빌렸는데 이듬해 외환위기로 고금리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이다. 이후 전분당사업을 CJ에, 해표 브랜드를 포함한 식용유 사업부문을 사조그룹에 넘기며 재기를 시도했지만 어려움을 겪었다.

 신 전 회장은 70~80년대에는 세계 젊은 최고경영자연합회인 ‘국제 YPO’의 본부 집행위원을 역임하며 한국 경제의 글로벌화를 위해 노력했다. 89년에는 모교인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연구소에 고인의 이름을 딴 ‘M.S. SHIN 펀드’를 만들어 한국학연구센터를 설립했다. 미국 내에서 한국학과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연구가 척박한 상황을 보고 ‘한국 알리기’에 나선 것이었다. 99년부터 2001년까지는 전경련 환경위원 장을 역임하며 환경과 관련한 경제정책과 법규를 개선하는 데 앞장섰다. 신 전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사돈관계를 맺기도 했다. 고인의 장녀가 노 전 대통령의 장남과 결혼했지만 두 사람은 헤어졌다. 이로 인해 신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 당시 검찰 조사를 받았고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 일부를 나눠내기도 했다.

 신 전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에는 31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효성그룹 회장인 조석래 전 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유족은 부인 송길자씨와 2남1녀.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02-3410-6917. 발인은 2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경기도 성남 분당메모리얼파크.

장정훈·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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