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정치인 단식, 외국에선 사례 찾기 힘들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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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호 06면

문재인·심상정·이정희….

단식의 정치학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했던 ‘유민 아빠’ 김영오(47)씨를 따라 동조 단식을 한 정치인들이다. 문 의원은 김씨가 단식을 중단한 지난 28일, 열흘간의 단식을 그만뒀지만 새정치민주연합·통합진보당 일부 의원은 아직 단식을 풀지 않고 있다.

단식의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엔 진전이 없다. 문 의원의 단식에 대해서도 ‘좋지 않게 본다’는 응답이 64%였고 ‘좋게 본다’는 24%에 불과했다(26~28일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

단식은 약자가 몸을 담보로 상대방의 죄의식에 호소하는 정치 수단이다. 서울대 김광억(인류학) 명예교수는 “새로운 사회적 양심을 창조하는 정치적 행위”라고 규정했다(1995년 논문 ‘단식과 몸의 정치학’).

인도의 간디는 평생에 걸쳐 145일 동안 단식투쟁으로 독립을 이끌어냈다. 한국에선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단식이 성공 사례로 꼽힌다. YS는 1983년 5·18 3주년을 맞아 ‘민주화 조건 5개 항’을 내걸고 23일간 단식했다.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YS는 85년 신민당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단식은 87년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내는 단초도 됐다.

DJ도 90년 지방자치제 실시를 요구하며 13일간 단식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DJ는 당시 민자당 대표 자격으로 찾아온 YS에게 “지방자치는 지금 아니면 영원히 기회를 놓칠 것”이라고 압박했다. 결국 노태우 정부는 지방자치제 실시를 약속했다.

유력 정치인 중 가장 오래 단식한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95년 내란 혐의로 구속된 그는 28일을 굶었다. 그러다가 “계속 단식하면 치매에 걸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식사를 재개했다고 한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짓이 단식”이란 말도 남겼다.

단식은 종종 희화화된다. 과거 한 야당 대표는 단식 도중 곰국을 먹었다는 의혹을 받은 끝에 쌀뜨물을 먹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를 찾아온 YS가 “굶으면 죽는다”고 한 말도 회자됐다. 단식 중 화장실에서 카스텔라를 먹다가 기자들에게 들킨 의원도 있다.

단식은 위험하다. 단식 시작 후 3주가 지나면 신체는 기관을 갉아먹기 시작해 생명이 위험해진다. 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박관현씨는 40일간의 옥중단식 끝에 29세로 숨졌다. 영국에선 81년 IRA 무장대원 보비 샌즈가 단식 66일 만에 숨져 당시 대처 총리가 곤경에 휘말렸다.

특히 민주화 이후 정치인들의 단식은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단식 정치가 광화문광장이나 청와대 앞 등 거리에서 이뤄지는 것도 특징이다. 서울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는 “제도권 정치인이 대화 대신 단식 같은 비의회적 방법으로 문제를 풀려는 건 외국에선 찾기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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