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 학생과 부모가 사회에 보내는 글|올해 동국대 수석 졸업한 방귀희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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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구현이의 자살기사를 읽고 저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길이 없었습니다.
기사를 읽은 정상인들이야 『쯔쯔』하며 혀를 차고 단순한 동정의 대상으로만 넘기겠지요.
하지만 구현이와 같은 처지를 겪은 저는 가슴이 아프고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왜 우리들은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나 남들의 놀림감이 되어야 하고 자기를 학대하며 뼈저린 좌절을 맛보아야 할까요.
어린 나이에 뇌성마비로 정상인들과 같은 예민한 판단을 내릴 수도 없을 텐데 주위의 놀림이 얼마나 심했으면 불편한 손으로 자기 목에 전깃줄을 감을 생각을 했을까요.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머리, 사랑하는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눈, 자상하신 아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 자기의 의사를 말할 수 있는 입, 풍선을 손에 쥐고 달릴 수 있는 팔과 다리….
이런 것들이 모두 갖추어져야만 사람일까요. 이 중에 한가지라도 할 수가 없다면 사람이 아닌가요.
아니, 우리들도 똑같이 부모로부터 태어났는데 왜 사람답게 살수 없는지요.
무엇 때문에 죄지은 사람처럼 남의 멸시 속에 자신을 감추며 살아야 합니까.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눈이 어두워지고 기동을 자유롭게 못하는 등 일생에 한번쯤은 똑같이 심신의 장애를 느끼기 마련인데….
무엇이 그리 선택받은 양 버스를 타려는 소년을 밀어 목숨을 잃게 하고, 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듭니까.
한번쯤 정말로 죽고싶다는 생각을 처절하게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정상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억지 관심을 가지고 자꾸 쳐다보며 우리를 동정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생각해 준다면 무슨 행사니, 모금운동보다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난 진실한 사랑을 보여 주세요.
입시 때마다 학과 선택조차 제 마음대로 못하게 막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해낼 수 있을까 의심하지 마시고 해낼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시고 기대해주세요.
우리 스스로도 많은 노력을 해야됩니다. 스스로 불구란 생각을 지워버리고, 우리 주위에 아주 높게, 아주 두텁게 쌓아 올린 격리의 벽을 허물어야죠.
남 앞에서 자기의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길러야죠. 스스로 찾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의 권리를 찾아주겠어요.
우리도 하면 된다는 생각에 앞서 남들과 똑같다는 생각을 머리 속에 새기도록 노력해야죠.
남들처럼 능력을 갖추면 우리를 비웃을 수도 동점 할 수도 없을 겁니다. 정상인들과 나란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포기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아야죠.
앞으로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장애를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니라도 우리의 아들 딸, 그 누가 장애의 포로가 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팔다리가 식었기에 우리의 가슴은 용광로처럼 뜨겁고 못 듣고 못 보기에 우리의 영혼은 아침햇살처럼 밝고 신선할 수 있다는 자신을 보여 주여야 해요. 「헬렌·켈러」의 전기 말고라도 얼마 전 목발을 짚고, 남한 최고봉을 정복한 인간 만세의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정상인들을 우리가 미워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그들도 사람의 눈길로 우리를 감쌀 것입니다.
약해지는 마음 떨쳐 버리고 힘차게 삽시다.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서로 도우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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