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의 세계』는 꾸민 얘기였다|퓰리처상 수상한 WP여기자「쿠크」의「심층취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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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피처라이 팀(특집보도)부문에서「퓰리처」상을 수상한「워싱턴·포스트」지의 25세 여기자「래니트·쿠크」양의 특집기사『「지미」의 세계』가 사실이 아닌 꾸며 쓴 기사임이 뒤늦게 밝혀져「퓰리처」상 반납 및 기자직 사퇴소동까지 벌어졌다.
작년 9월「워싱턴·포스트」에 연재된「쿠크」양의 특집시리즈『「지미」의 세계』는 이제 겨우 8살밖에 안된「지미」라는 소년이 마약을 상습적으로 복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생생하게 보도, 병든 미국사회를 만천하에 고발하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있다.
철도 모르는 소년「지미」는 복잡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더구나 자기 어머니의 남자친구가 강요하는 헤로인을 상습적으로 복용해 완전히 중독자가 돼버린다는 줄거리다.
이 기사가 나가자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어린아이를 둔 부모들은 미국 내 마약의 만연풍조를 인정은 하면서도「지미」소년의 경우와 같이 나이 5세 때부터 마약을 복용하기 시작해서 8살이 되도록 성인중독자를 뺨칠 정도가 됐다는 신문보도를 보고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 보도가 나가자마자 미국 각지의 22개 신문들이 이 기사를 인용하면서 마약남용 사태를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을 규탄했으며, 8개 신문은 사실로까지 다루는 등 그 파급효과는 대단했다.
이 기사에「지미」소년의 주거지가 『워싱턴 남부지역』이라는 귀절이 나오자「메리언·배리」「워싱턴」시장은 직원들에게『「워싱턴」시의 명예를 걸고 이 소년의 집을 찾아내라』는 성명까지 낼 정도가 됐다.
그려나 경찰까지 동원해서 6개월간이나「워싱턴」시내를 샅샅이 뒤졌으나「지미」소년의 소재는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배리」시장은 결국 필자인「쿠크」에게『「지미」소년의 선도를 위한 조치를 취해주겠다』면서 소재를 알려줄 것을 간청했으나, 「쿠크」는 취재대상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그 소년의 신원을 밝히기를 끝까지 거부했다.
「워싱턴」경찰은 나중엔「쿠크」기자의 소스를 밝히기 의해 취재기록을 법정 소환하려는 준비까지 갖추었으나, 언론기관과의 법정투쟁에서는 대개의 경우 공공기관이 불리하다는 점을 감안, 이를 포기했다.
이 무렵「워싱턴·포스트」편집국에서는『「지미」의 세계』라는 기사의 신빙성이 의문시된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쿠크」기자는 계속 함구로 일관했다.
그러던 중 지난 13일「뉴욕」에 있는「퓰리처」상 본부로부터『「쿠크」기자가 쓴 기사 「지미의 세계」가 미국사회에 교훈을 준 공로를 인정, 「퓰리처」상을 수여한다』는 전문이 「워싱턴·포스트」에 전달됐다.
당사자인「쿠크」여기자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입사 1년밖에 안된 올챙이 기자가 다른 기자들의「인터뷰」세례를 받았고, 「워싱턴·포스트」지는 그 이튿날「쿠크」기자의 사진을 곁들인 이 영광을 자축했다.
그런지 24시간도 채 못돼서 상황은 돌변했다.
「워싱턴·포스트」의「도널드·그레이엄」사장이 특별성명을 통해『「쿠크」기자는 그녀가 쓴 기사내용 중 상당부분이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창작이었음을 인정했고 따라서「퓰리처」상을 반납하는 동시에, 「워싱턴·포스트」기자직을 사퇴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쿠크」기자가 스스로 이 기사가 가짜였음을 회사측에 고백했는지「워싱턴·포스트」가 다른 경로로 이 기사가 가짜임을 밝혀냈는지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측은 그동안 화가 나있던「배리」시장에게도 이 사실을 통고하는 한편, 「뉴욕」의「퓰리처」상 본부에도 수상 반납 의사를 공식 통보했다.
미국의 3대 TV는 15일 저녁 뉴스시간에 이 사실을 모두 톱으로 다뤘다. 「퓰리처」상 심사위원회는 이 같은 당혹스런 통고를 받고 즉각 긴급회의를 소집, 대책을 논의중이다.
익명의 한 심사위원은『「퓰리처」상의 역사상 이런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면서『대외적 체면손상을 무릅쓰고 진실에 입각한 사실보도의 원칙을 고수하려는「워싱턴·포스트」의 태도에 경의를 표할 뿐』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건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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