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은 "고독한 성직"|대법원장직서 물러나는 이영섭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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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취임초에는 포부와 이상도 켰었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회한과 오욕으로 얼룩진것 뿐이었습니다.』
법조인이라면 누구나가 동경하는 대법원장을 역임했던 그도 떠나는 순간엔 이상과 현실의 깊은 괴리를 뼈저리게 느꼈던 모양이다.
15일 30년간 입었던 법복을벗고 야인으로 돌아간 이영섭 전대법원장(61)은 『재임중 하루도 마음편한날이 없었다』며 『두어깨가 날아갈듯 가뿐하다』고 했다.
79년3월 대법원장으로 취임, 2년1개월간의 재임기간증 박대통령시해사건과 김대중사건등 역사적사건의 사법적 처리를 도맡은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전에 학교(이대)에서 강의를 했지만 그동안 실무에 시달려 다 잊어버렸어요.
당장 변호사 개업하기도 그렇고…. 생활·건강등의 문제도 있으니 당분간 관망하다 움직여봐야지요.
-대법원판사로 20년이나 계셨는데….
▲자장이 아니라 전무후무할것 같아요. 어떻게보면 무능했기 때문인것도 같고…. 후배들한테 미안할 뿐입니다.
-대법원장으로서 보람을 느꼈다면 어떤 것입니까.
▲미제사건 안남기고 모두 처리한 것이지요. 일부 법관들이 불평도하고 반발한단 소리는 저도 들었읍니다. 아무리 공정한재판이라도 몇년씩 걸리면 소송당사자에겐 엄첨난 피해가 와요.
-후배법관들께 들려줄말씀은….
▲법관은 일종의 성직입니다. 질박한 생활에 만족해야지요. 친구도 친척도 없는 고독한 생활을 이겨내야 합니다.
-재임중의 공과를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퇴임사대로 「순한과 오욕」뿐인것 같아요. 이렇다할 공은 없는것 같고….
-재임중 어려웠던일은.
▲조금 지나야 말씀드릴수 있겠어요. 참으로 어려웠던 시기였고 괴로왔던 나날이었습니다. 바람도 막아야했고… (이 질문에 대해서만은 답변을 꺼렸다. 그리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기만 했다).
-법관과 변호사의 부작용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선비는 오얏나무밑에서 갓끈을 매지않는 법이지요. 법관이 변호사와 사적인 접촉을 가지기때문에 부작용이 있는것 아닙니까. 저는 그래서 늘 도시락을 갖고 다녔어요.
강요할수는 없지만….
-재임시 청탁도 많이받으셨을 텐데요.
▲대법원장이면 다 되는줄 알고 사방에서 쏟아지더군요. 청탁을 하면 그저 웃으면서 듣기만하고 대답은 안합니다. 그러다보니 일가친척·친구가 다 떨어지더군요.
-법관이 되신 동기는.
▲엄격한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법학을 전공했고 친구들따라 시험을 봤더니 합격하더군요.
「인권옹호」등 거창한 포부는 없었어요.
-다시 태어나도 법관직을 택하시렵니까.
▲글쎄요. 별로 생각이없는데요 (표정에는 그의 말대로「한과 오욕」의 빛이 역력했다).
-효자라고 소문이 났는데….
▲아들이 대법원장이라고 노모(홍옥섭여사·83)께서 좋아 하셨지요. 대법원장이 뭔지도 잘 모르시면서…. 공관에 계셔 말동무도 없고 답답하실것 같아 자주 드라이브를 함께 다닙니다. 조석으로 보살피지만 효자란말은 당치도 않아요.
-슬하에 자녀는….
▲슬기롭지 못해서 좀많아요. 2남3녀지요 (사법파동때 사직했다가 재임명된 강철구판사가 맏사위다.)
-이사를 하셔야 할텐데….
▲당장 갈곳이 마땅치 않아요. 강서구목동에 맏아들 (기승씨·32·은행원)이 사는데 그곳으로 합칠생각입니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손자가 자꾸 눈에 밟히고…. 지금 수리중이라 5월3일쯤 이사하렵니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한남동공관에서 차분하게 설명하는 노법관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은듯했다.
시종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지만 낙관없는 동양화처럼 어딘가 허전하고 쓸쓸함을 느낄수 있었다.<권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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