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도 못 찾아낸「얼굴 없는 증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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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얼굴 없는 층인」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교통사고 피해자가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사이 「동생」이라며 경찰에 나와「형」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던「윤경태」란 인물(본보10일자 7면 보도)의 정체가 검찰과 경찰의 끈질긴 수사에도 밝혀지지 않은 채 계속 안개속물 헤매고 있다.
이 사건이 보도된 후 경찰과 서울시경으로부터 진상을 밝히라는 지시를 받은 서울 영등포경찰서는『빠른 시간 안에 진원을 밝혀 오해를 풀겠다』고 장담했으나 기대를 걸었던 수사단서들이 모두 허탕을 쳐 과연「윤경태」가 실존 인물인가 하는 의문마저 일으키고 있다.
경찰이 처음 기대를 걸었던 것은「윤경태」란 인물의 컴퓨터 조회.
주민등록증번호도 없는「윤경태」란 이름을 조회한 결과 나이(29)와 이름이 같은「윤경태」를 찾기는 했다. 본적도 자칭「윤경태」가 적은「충남 서산군」과 같았다.
그러나 컴퓨터에 나타난 「안면면 정당리」와 조서에 기록된 「남면 신온리」는 면과 리가 틀리고 신분도 일반인이 아닌 군인이었다.
물론 이 사건 피해자 윤경삼씨의 본적(충북보은군)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이었고 호주도 엉뚱하게 달랐다.
1차 수사에 실패한 경찰은「윤경태」가 피해자의 동생이라는 주장을 철회하고 그가 조서를 받기 위해 경찰에 나왔을 때 피해자의 여동생이라는 여자가 따라왔었다고 말하고 윤경삼씨의 여동생의 애인일지도 모른다며 수사를 벌였다.
피해자 윤씨에게는 영순35방)·영희(31)·영애(23)씨 등 2명의 누나와 1명의 여동생이 있다. 이들 중 누나들은 이미 출가했으며 막내인 영애씨는 미혼이다. 경찰은 경찰에 출두했던 20대 여인을 막내인 영애씨라고 보았었다.
그려나 지난11일 하오2시30분쯤 경삼씨가 입원하고 있는 한강성심병원609호실에서 형사와 만난 영애씨는『조서를 받기 위해 경찰에 출두한 사실이 없으며「경태」란 이름의 애인을 둔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사고 후 오빠의 입원비(30만원)를 마련키 위해 친척집 등을 뛰어다니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조서 받을 경황이 어디 있었겠느냐고 펼쩍 뛰었다. 윤씨의 병간호를 하고있는 어머니 주복순씨(63) 또한 『내 뱃속에서 낳은 아들 중에 그런 아들은 없다』며 경찰의 처사에 분개했다. 주씨는 경일·경이·경삼씨 등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만약 아들을 하나 더 낳았다면 이름을 「경오」라고 지었지 「경태」라고 짓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농담을 하기까지 했다.
기대를 걸었던 단서들이 깨어지자 경찰이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고있는 것은 조서에 찍혀있는 「윤경태」의 지문감식.
조서의 제일 끝 부분「윤경태」란 자필서명과 함께 인장 대신 눌러 찍은 오른손 엄지의 지문으로 과연 윤경태의 신원을 가려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영등포경찰서의 한 수사간부는『이번 사전은 경찰의 위신과 명예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윤경태의 신원을 기어이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표명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경찰의 태도는 맥이 빠지고 사건은 갈수록 묘연해지는 느낌이다. 수사경찰의 공신력에 먹칠을 할지도 모를 이번 사건을 두고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은 하루빨리 진상이 밝혀져 경찰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다. <김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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