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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바닥에서 올라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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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창피했다. 우리나라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지난주 영장실질심사를 피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이 차명폰을 쓰고 위치추적을 피해 휴대전화를 끄고 피해 다니던 모습을 본 느낌이다. 이들의 혐의는 ‘뇌물수수’와 ‘입법장사’. 전형적인 부정부패와 파렴치 범죄다. 이들의 목적은 ‘하루만 버티자’였을 거다. 다음 날이면 ‘방탄국회’ 뒤로 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탄국회란 회기 중에 국회의원은 체포되지 않는다는 ‘불체포’특권을 남용해 범죄혐의에 연루된 국회의원을 보호하려고 임시국회를 소집하는 행위를 이르는데 우리나라에선 고유명사처럼 쓰인다. 툭하면 열려서다. 2012년엔 저축은행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던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체포를 막기 위해 방탄국회를 여는 바람에 전해 결산심의까지 파행된 적도 있다. 이번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특별법이 표류하는 정신 없는 와중에 19일 자정 직전에 방탄국회를 위한 임시국회를 소집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놀라움은 다른 곳에서 왔다. 이렇게 도망 다니던 국회의원들을 결국 법원에 세운 집요했던 여론의 힘 말이다. 이번에도 욕만 한 번 하고 유야무야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방탄국회가 성공하지 못한 사례는 별로 없었으므로.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민심은 과거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한데 너무 나가는 것 같다. 이를 계기로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불붙었다. 이 법은 과거 영국에서 군주가 국민의 대표기구인 국회를 마비시키려고 국회의원을 체포하던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우리나라에선 과거 군부독재 시절 국회파행을 막는 데 유용하게 활용됐다. 그러다 민주화 이후 불체포특권은 국회의원의 비리나 파렴치 범죄를 보호하는 데 더 힘을 발휘하면서 폐지 논의가 여러 번 나왔다. 대선주자들도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폐지를 대선공약 단골 메뉴로 올렸고, 국회에서도 몇 차례 법안 심의에 올려지기도 했다. 일부 법학자도 폐지에 동조한다. 삼권분립이 보장되고 입법부가 행정부의 우위를 점하는 민주국가에선 불필요한 특권이라는 것이다. 또 언론에서도 불체포특권의 폐지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크게 다루어진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엔 신중론도 이에 못지않다. 우선 헌법조항이라 고치기 쉽지 않다는 기술적 문제가 있다. 더 중요한 건 이 법이 ‘악의(惡意)의 정부’로부터 민의(民意)를 지키는 장치라는 최초의 의도를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군부독재가 끝났다고 다시는 나쁜 정부가 없을 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법이 아니다. 민의를 대변하라고 준 특권을 파렴치 범죄 보호에 남용하는 우리 국회의원들의 상식과 수준이 문제다. 사실 국회의 요즘 모습은 실망감을 넘어 절망감을 준다. 특히 최근 세월호특별법 정국에선 입법 및 협상 능력에서도 바닥 아래 바닥이 있음을 연일 드러낸다. 세월호법은 ‘속도’보다 ‘공감’이 중요한 법이었는데 이해당사자의 공감을 받지 못해 정국을 파행으로 끌고 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일부 의원들의 심각한 정체성 혼란도 목격했다. 파렴치 범죄를 저질러도 잡혀가지 않겠다는 특권의식만 충만하고, 유족을 ‘노숙자’에 비유하거나 “유가족들의 거부는 보상 잘 받으려는 속셈” “국회가 민간인 결재 받느냐”는 등 빈곤한 현실인식을 드러내는 ‘나쁜 집권자’ 같은 발언을 쉽게 한다.

 국회의 존재이유는 여·야당을 막론하고 집권이 아니라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다. 국민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을 특권층으로 착각하는 의원, 민의 대변보다 투쟁만 일삼는 투사들이 득시글대는 국회를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때문에 ‘민의는 언제나 존중돼야 한다’는 상징적인 법마저 악용하여 악법의 대표 사례처럼 만듦으로써 폐기 논란에 휩싸이게 했다. 법 문구가 아니라 법의 정신을 존중할 줄 아는 국회를 기대하는 건 너무 무리한 꿈인가.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