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프로 지나치게 「원색적」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이제까지의 통념으로는 남녀노소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가장 무난한 프로그램이라면 누구나 쉽게 쇼프로그램을 들어왔다.
우리네 TV쇼가 다른 프로에 비해 특별히 잘 만들어져서라기 보다 불전전한 냄새가 나는 남녀관계의 민망함이나 잔인하고 끔찍스런 폭력장면 따위와 마주칠 염려가 없다는 안전도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오랜 고정관념에도 드디어 변화의 시기가 온 것 같다.
어린이(혹은 청소년)시간만 끝나면 즉시 TV앞을 떠나도록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모처럼의 주말기분으로 너그러워진 부모들이 시청을 허용한 토요일 저녁의 대형 쇼들-분명 방영시간이 7∼9시고 보면 패밀리 쇼의 성격이 분명한데 막상 화면에 담기는 내용은 그게 아니다.
흔히 「TV형 가수」니 「비디오 가수」라고 불리는 연예인들(자신들의 본령인 노래보다는 얼굴이나 몸짓 따위로 행세하는)을 연로하신 부모님이나 성장기의 자녀들과 함께 본다는 것은 다소 과장법을 쓰자면 일종의 고통이다.
「선정적」이란 표현이 너무 점잖아서 미흡할 만큼 원색적인 차림새와 몸짓, 노래 아닌 기성, 어지러운 카메라 워크와 요란한 조명들은『모르긴 해도 술꾼들의 눈에 비친 밤 무대가 아마 저렇겠구나』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MBC-TV는 월요단막극 『사랑의 계절』(6일 밤10시5분) 1백회 특집으로 90분짜리 『사랑의 굴레』를 방영했다(김수현 작·김지일 연출).
아름답고 재능 있는 한 여자(김혜자 분)가 가정을 가진 유능하고 매력적인 남자(박근형 분)를 사랑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늘진 삶을 살아간다.
그 여자에게는 그녀를 지극히 사랑해서 노총각으로 지내며 그녀가 필요로 할 때는 언제고 달려와 주는 남자친구(최불암 분)와 그녀를 뜨겁게 사모하는 젊은 청년의사(이정길 분)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고독을 견디지 못해서 수면제로 자신의 삶을 끝낸다.
이상의 줄거리에서 보듯 지극히 멜러드러매틱한 주제를 세련된 솜씨로 깎은 수정유리 그릇처럼 군더더기 없이 처리 해낸 것은 이 작가의 장기인 절제된 대사 탓일 듯.
그러나 이 시간 첫 회였던 같은 작가의 『방황의 끝』에서도 그러했듯 보는 각도에 따라「불행한 여자의 행복」같기도 하고 「행복한 여자의 불행」같기도 한 주제가 대부분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성냥팔이 소녀」가 들여다보는 유리창 안의 생활처럼 현실감이 없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경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