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립 시급한 대학상|이무길<경희대 정외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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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캠퍼스에 봄비가 내린다. 삼삼오오 흐르는 우산의 항렬·그 속에 표정 없는 학생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그 누구도 터질 듯이 부푼 목련꽃 봉오리 떨어지는 막은 빗방울을 즐기려 하지 않는다. 교시탑의 위용도 오늘 따라 빗발 속에 우중충하기만 하다. 이 을씨년스런 캠퍼스의 정경은 새 학기 들어 들추어진 사학비리의 여파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면 이는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지적 풍요를 누리며 마음껏 학문에 정진하려는 젊은 지성들에게 내린 어 차가운 현실의 비는 캠퍼스 안팎 곳곳에 누적되어 있던 더러운 흙먼지들을 말끔히 씻어 갔건만 응어리진 마음은 풀릴 길이 없는 것이다.
어려운 가정환경과 복잡한 자기 현실을 극복하고 대학에 들어온 젊은이들.
그들에게 내리는 이 차가운 비는 양심의 불모지를 적신 단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그들은 움츠린 어깨로 총총걸음을 치며 우산 속에 자신의 얼굴들을 숨겨야만 하는 것일까?
학생은 교주의 비리를 따지기 앞서 자신의 학교를 필연적으로 사랑한다. 그들은 모교의 발전을 염원하며 퇴보를 염려한다.
환자가 환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려 하듯이 그들은 모교가 수술대에 올려지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술은 치료와 함께 위축과 불신이라는 새로운 후유증을 그들에게 안겨다 주었다.
잘린 환부가 대중 앞에 공개됨으로써 빚어진 2중의 고통은 적어도 받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학의 명예는 곧 학생의 명예이며, 대학이 병들면 그 1차적 치료의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이번 사학비리척결은 사학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했지만 사제간에 불신풍조가 더욱 깊어질 여지를 남겼다는 또 하나의 아이러니를 안고 있다. 이것은 사학발전의 가장 큰 저해요인이다. 스승의 사랑에 찬 가르침이 학생에 의하여 잘못 인식되는 것처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다.
사학의 바람직한 운영과 발전은 그것을 운영하는 몇몇 교육자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이사회의 혼탁한 공기가 국가 최고의 이성이요 사회 최고의 양심인 대학의 힘찬 돌개바람에 의해 카타르시스 되기를 열망하는 전체사회인의 공통 과제다.
오늘 내리는 이 차가운 비는 내일이 오면 잔뜩 부푼 저 목련꽃봉오리들을 활짝 피게 해 추리라 믿고있다.
▲경남 하동 출생 ▲서울예고 졸업 ▲경희대 정외과 4년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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