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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섭 추모 유작전시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재작년에 작고한 서양화가 박항섭씨의 2주기를 맞아 미술계는 29일 추모회를 갖는 한편 첫 유작전을 마련했다(30일∼4월 7일 현대화랑). 추모의식은 유작전을 연 전람회장에서 작가 평론가 화랑협회 등 미술계인사 1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가졌고 이어 묘소까지 다녀옴으로써 미술계의 흐뭇한 선례를 만들었다.
한 작고작가의 추모전이 이같이 범 화단적 행사로 마련된 것은 보기 드문 미담. 출품작의 대부분이 「비매품」임에도 화랑 측에서는 선뜻 초대전을 주선했다는 뒷이야기다.
구상전 그룹의 주축을 이루었던 박 화백이 뇌혈전증으로 타계한 것은 79년 3월 29일. 56세의 중견작가로서 한참 원숙한 시기였다.
그는 71년 국전에서 추천작가상을 받은 뒤 줄곧 교직마저 버리고 오로지 화실에 묻혀 제작에만 열중해왔으며 9번째의 개인전을 준비하다가 쓰러졌다.
시화적이고 감성적인 순수조형 사고를 가졌던 박 화백은 가벼운 묘사를 기피했으며 그의 인간성 그대로 깊이 사색하는 작품을 제작했다.
『사인이 없는 그림은 모두 불태워 버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하는데 그만큼 자신의 작업에 성실하고 책임질줄 아는 작가였다.
그래서 과작에 속하는 편이었지만 반면에 그의 작품을 대하면 우선 얼마나 애정을 갖고 애썼는가하는 점에 공감이 가고, 또한 현실감을 넘어선 색과 선이 환상에 젖어들게 된다.
화면은 매우 얇은 채색으로 다듬어져있지만 오랜 기간의 작업으로 얻어진 마티에르다. 거기 표현한 사람이나 물고기, 혹은 새와 짐승들은 이미 시적으로 승화된 사물들이다.
1923년 황해도 장연 태생으로 일본 천단화학교에서 수학했고 동란 중 남하하여 국전과 대한 미협전에 출품하는 한편 56년에는 창작미협의 창립회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한때 신상회 창립에도 관여했으나 67년 구상전을 창립하면서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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