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식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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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양학교수 20여명이 한국표준식단을 만들어 농수산부에 제시했다. 식량절약과 식생활개선을 위해 아침·점심·저녁으로 꾸며진 이 메뉴는 무려 5백60가지. 보리밥과 근대국에서 비름나물 무침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특히 하루 한끼는 우유를 곁들이고 때로는 자장면 샐러드를 먹게 만든 것은 이채롭다. 몇년전만해도 이런 아이디어가 나올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새삼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표준식단에 앞서 생각나는 일이 하나있다. 요즘 세대들 가운데 이런 식단을 제대로만들어낼 수 있는 주부가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그정도의 메뉴도 감당못할 주부는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얼마나 맛깔스럽게 만들어 내느냐다.
지금의 중·고교여학생들이배우고 있는 「가정」 교과서를 보면 온통 낯선 메뉴들뿐이다. 푸딩, 미트볼, 스파게티, 젠자오쯔, 오믈레트, 커리라이스…. 한국의 예비주부들에게 이런 메뉴를 무엇때문에 가르쳐야 하는지 알수 없다. 식단은 파티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의 어느 여고3년생들에게 국어교사가 작문을 시켰다. 제목은 『우리집 장독』. 학생들은 흑판에 적힌 제목을 보고 일제히 약속이나 한듯이 고함을 질렀다. 그런 제목으로는 작문을 할수 없다는 항변이었다.
글쎄 이런 보화를 들으며 이것은 국어교육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 (장) 담그는 일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는 이여학생들에게 작문은 엄두도 못낼 일일것이다.
신혼주부도 예외가 아니다. 집을 따로 나고 아파트 살림이라도하게 되면 언제 누구로부터 그런일을 배우고 익힐 기회가 없다. 별수없이 비닐봉지에 든 고추장과 된장을 사먹어야 한다.
오늘의 생활 리듬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언젠가는 식단의 모든 것을 공장조제에 맡겨야 하는 시대가 우리에게도 분명 올 것이다.
어느새 슈퍼마키트에는 비닐 주머니에 포장된 매운탕이 있다. 하물며 간장· 된장과 같은 번거롭고 귀찮은 음식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일은 TV코미디의 한가한 소재로나 각광을 받을까….
하지만 우리는분명 잃어도 좋은것과, 끝내 지켜야할 것을 따로 갖고 있다. 수천년을 통해 익히고 즐겨온 식생활의 습관과 미덕을 그처럼 허술히 버릴 수는 없다.
바로 그런 미덕을 끝까지 지켜주는 최후의 어머니는 교과서다. 중등교육의 기본이 되는 교과서에서나마 아름다운 전통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어야할 것이다.
문교당국의 「아버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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