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실종,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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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창경원의 미아는 차라리 귀여운 데라도 있다. 잠시동안의 당혹과 불행이 곧 「해피· 엔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가 아니다. 집을 나간 어린이들이 끝내 소식이 없고 이 때문에 가족들이 나날을 초조와 비탄 속에서 살게 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더구나 이것이 유괴인지 가출인지 또는 단순한 미아인지 그 성격조차 분명치 못해 손을 쓰지 못한다면, 그 불행은 한 가정에 그치지 않고 온 사회의 고통이 된다.
경찰통계에 따르면 79년 한해에만도 가출인이 3천 4백 19명이고 이 가운데 청소년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작년만 해도 서울에서 1천여명의 어린이가 집을 나가 이 가운데 2백여명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어린이의 실종이 유괴라면 당연히 경찰수사로 행방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유괴성 실종이 확실한데도 경찰이 무성의하게 단순한 미아로 처리해서 흐지부지되고 만다면 그보다 답답한 일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윤상군의 경우처럼 범인들이 돈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인신매매나 암매장 등 끔찍한 범죄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때 경찰의 수사태도는 좀 더 성실성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실종의 원인이 고의적인 가출로 거리에서 방황한다면 사회의 따뜻한 보호와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적극적인 선도교육이 필요하다.
19세기 후반에 정신분석학이 발달하면서 어린이는 비합리적인 충동에 의하여 움직이는 『작은 악마』로 간주되기도 했으나 현대의 아동관은 그들의 자기변혁 의지를 존중해 주고 목적의식적인 지도의 대상으로 보게 됐다.
따라서 가정불화나 빈곤, 불량교우 때문에 가출하는 어린이는 가정과 학교의 선도에 의해 비합리적인 충동이 억제되고 소박하고 순진하고 행복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1957년에 선포된 우리의 어린이헌장은 어린이에 대한 어른의「다채로운」 사랑을 담고 있다. 해마다 5월 5일이 되면 갖가지 행사로 이들을 기쁘게 한다. 1961년에 마련된 아동복리법은 아동이 그 보호자로부터 유실·유기·이탈됐을 때 국가의 보호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린이를 인간으로서 존중하지 않고 부모의 부속물로 보려는 견해가 아직도 팽배하다. 참된 애정으로 기르려 하지 않고 때로는 밖에 내다버리는 비정의 부모도 있다.
마음껏 뛰어 놀 마당이 부족해 길가의 위험지대에 방치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나날이 늘어간다. 한번 불량아로 낙인찍힌 어린이는 좀처럼 교화되지 못하는 분위기도 문제다.
국토의 분단과 동족상잔을 치른 우리에게는 유난히 아동문제가 많았다.
1950년대만 해도 고아·미아·기아·질병·굶주림 등 벅찬 난제들이 많았다.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는 자연발생적인 아동문제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아동문제가 초미의 급선무다. 가출한 어린이는 잘 보호했다가 가정에 되돌려주는 사회적 장치의 확대가 필요하다. 실종된 어린이는 적극적으로 찾아주는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결국 무엇보다도 어린이의 가출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는 가정의 역할이 크다고 볼 때 화목한 가정, 사랑으로 충만된 자녀교육을 이룩하려는 어른들의 수신제가의 노력이 가장 절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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