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0)제72화 비규격의 떠돌이 인생(5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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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목근문고」>
『어떨까요? 동경에다 한국의 도서실을 하나 만드는 겁니다. 이 사람이 개인작업으로 몇 권의 책을 쓰는 것보다 한국문화를 일본에 소개할 일꾼들을 양성하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요. 뜻 있는 한국학생들이 매주 두어 번씩 모여서 미리 정해 두었던 「테마」를 가지고 번역공부를 하는 겁니다. 거기 한국의 문헌이며 신간서 들도 모아 두고요. 서로 잘못을 지적하고 다듬고 해서 가장 잘 된 것은 월보에 실립니다.
이러기를 얼마동안만 반복하면 그 중에서 변역의 능수도 몇 사람은 생길 것이 아닙니까? 문제는 순수한 동지적인 봉사활동이면 이상적이지만 그것은 바랄 수 없고 참가하는 학생들에게 학비의 일부라도 도와주도록 합니다.
그러자면 재원이 좀 필요하겠지요. 우선은 과히 교통이 불편하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방 두어 칸을 빌어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조국을 모르는 교포자제들을 위해 계몽적인 작은 책자들도 만들구요. 이런 기관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데 USIS가 그런 일에 조력을 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브루노」씨는 서울로 돌아가서 거기에 대한 회신을 보내왔다.
『USIS는 공보활동이 본래의 목적인 만큼 새 일을 만드는데는 도움이 될 수는 없지만 일을 시작만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드리겠노라』 고-.
그때의 자초지종은 일본의 「문예춘추」에 소상하게 쓴 것이 있고, 사륙배판 20여 「페이지」의 『「코리언·라이브러리」 창간안내』에는 더 자세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어 여기서는 생략하지만, 나는 이런 동기로 해서 그 옛날 신흥사의 절 밥에서 「아동잡지」란 미로에 끌려 들어갔듯이 또 한번 일본 땅에서 「돈·키호테」노릇을 하게되었다.
교포 중에서 재정적인 동지를 구하려고 북해도에서 구주까지 내 발로 찾아 다녔으나, 민단산하의 내 동족 중에 내 청사진을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고, 「정부에서 반역자시하는 인물, 조국에 돌아 갈래야 갈 수 없는 그런 인물」이란 경계신호가 언제나 내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그런데도 나는 민단총본부의 단가작사자요 한국학원의 교가도 내 손으로 지었다 (지금은 어떤 교가가 쓰이고 있는지 모르지만-).
당시의 거류민단의 실정이란 너무나도 전근대적이었다(현재의 민단은 그때와는 비할 나위 없이 체질개선이 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명색 중앙총본부를 위시해서 일본각 현의 본부 지부를 통틀어서 도서실 하나가 없고, 일인의 출입이라고는 전혀 없는 민단동경본부에는 화장실에 커다랗게 「어수세」 (오떼아라이)라고 써 붙인 글자가 눈에 띄었다.
교포지 「신세계신문」이 「평화선」(일본인이 말하는 이승만「라인」)문제를 두고 좌담회를 가졌다. 한국해군이 평화선을 침범한 일본어선을 나포했던 직후다. 좌담회 출석「멤버」는 일본측이 일어련(일본어업연합회)부회장·정치평론가 「미따라이·다쯔오」(어수세 신웅=전 경성일보사장), 한국 측이 민단총본부단장 모, 그리고 나-이렇게 넷이다.
좌담이 시작 된지 채 10분이 못 가 일어련의 부회장이 한국의 일어선 나포를 논란했다. 그러자 민단장 모가 『그 점에 대해서는 일본이 「오야고꼬로」(친심)로 양해해 주셔야 지요』했다.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망발이란 말인가. 일국의 거류민단을 대표한다는 인물이 일본 앞에 「어버이의 마음」을 애소하다니.
나는 내 바른편에 앉았던 「미따라이」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오또미상」이니 「아쟈빠아」니가 하룻밤 새 일본전국에 판을 치는 이런 경박한 국민 앞에 「오야고꼬로」라니 당신 환장했소!』하고-. (「오또미상」 「아쟈빠아」란 둘 다 그 당시 일본천지를 휩쓸었던 유행가와 익살문자)
바로 내 오른편에 앉았던 탓으로 네 번, 다섯 번 손가락질을 받은 「미따라이」씨에게는 정말 미안했다. 그 날의 그 단장씨의 망언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돌이켜 생각하면 조총련과의 주먹대결을 선결과업으로 삼던 민단초기의 체질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때이라 교포자제들의 조국에 대한 문화의식 같은 것은 미처 손이 미치지 못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인식이 거의 백지에 가까운 일본의 청소년들과 교포2세들의 계몽을 위해서 내 작은 능력이나마 기울여 보겠다고 마음먹었던 「코리언·라이브러리」는 일본전국을 주름잡다시피 해서 민단의 본·지부들을 찾아다녔지만 그 사람들 눈에는 내가 동냥꾼으로 밖에는 비치지 않았던지 내일을 돕겠다고 협력을 약속한 특별회원은 겨우 열 손가락에도 차지 않았다. 그새 고심 참담해서 찍은 「목근문고」 「목근소년문고」는 각현의 민단본부로 30부, 50부씩·기증지로 보냈건만, 동봉한 엽서에서 받았다는 회답을 보내오는 본부는 거의 없었다.
일본인 쪽에는 그런 대로 내 취지를 이해하는 인사들이 있어 「오오하라·소오이찌로오」 (대원총일낭=창부레이욘사장) 「사까모또·마사루」(판본승=병고현지사) 「마쯔다·다께찌요」(송전죽천대=전 우정대거)같은 이들도 특별회원으로 참가해주었다.
그러나 국가적인 체통으로 보나 일본인의 재력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 맞설만한 교포유지들을 규합해서 이사회를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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