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의 미발표 육필시조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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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수주 변형노씨의 유족과 문단후배들이 수주20주기(3월14일)를 맞아 『수주 변영노문선집』간행을 준비하면서 그 동안 유족에 의해 보관돼 있던 미발표유작시조와 잡지·신문 등에 산발적으로 발표했으나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시·시조·수상·영시 등을 공개했다.
새로 발굴된 육필시조(3수·무제)가 언제 씌어졌는지 정확친 앉지만 조국의 현실을 슬퍼하면서도 광복에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보인 내용으로 봐서 해방 전에 씌어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논개』『곤충구제』 등 그의 초기 시들이 대체로 저항정신과 민족적 긍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백두산을 다녀온 후에 쓴 『백두산에 갔던 길에』란 재목의 시조14편도 그러한 내용 때문에 당시에는 발표되지 못했던 것. 후에 중동중학에서 이 시조를 교재로 삼아 조선어를 가르쳤는데 이번 『수주문선집』에 수록하게 됐다.
이중 『무두봉상에서 천평일대를 부감함』과 『천지가에 누워』 두 편의 내용은 나라 잃은 설음과 그 속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에 대한 자괴가 표현됐다.
『무두봉 기어올라 /천리천평 내다보니 /넓기도 넓을시고 /우리옛터 예 아닌가 /이 흥이 잦기도 전에 눈물 벌써 흐르네』라고 읊고 『가파른 비탈나려 /상봉초벽뒤를하고 /쪽빛 같은 신담가에 /팔베개로 누웠으니 /안진 죄지음양하여 /가슴자도 뛰더라』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수주는 『조선의 마음』이란 시집을 25세 때 내놓아 우리문학에 뚜렷한 획을 그었고 그 후에도 민족과 조국을 생각하는 많은 시를 남겼다.
그리나 수주는 『명정40년』에 나타난 것처럼 일제의 억압 속에 겪어야했던 고통을 술로 달랠 때 갖가지 화제를 낳아 「주성」「기인」으로 더 알려져 문명은 오히려 감추어진 감이 있었다.
20주기를 맞아 발간되는 『수주문선집』은 전4부로 제1부 대표시선, 제2부 자숙적「에세이」, 제3부 대표수필선, 제4부 영시편으로 구성됐다. 대표시선에는 『조선의 마음』이 전재되고 8·15직후에 신문·잡지에 수록됐던 시25편을 묶어 광복시편으로 했다.
한편 김소운 유진오 이헌구 김팔봉 이용상씨 등 동료·후배문인들은 18일 KAL「빌딩」에서 『수주문선집』출판기념회를 갖고 수주묘소에 이 책을 헌정할 예정이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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