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8>|제72화 비규격의 떠돌이 인생<제자=필자>(46)|영변약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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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하르빈」서 돌아오는 길에 맹중리에서 기차를 내려 영변항「버스」를 탔다. 그 전년 동경의 어느 친구와 동행해서 영변까지 온 일이 있었고, 그 연분으로 영변정화여고가 청해와서 그 학교의 교가를 지은 일이 있다.
귀로에 영변에 들러 내 작사인 교가를 전교생의 합창으로 듣는다는 것이 미리부터 언약해두었던「스케줄」이었다.
약산 중턱에 있는 천왕사에 여장을 풀고 며칠을 머물면서 때때로 묘향산이며 태천 양화사를 찾기도 했다. 양화사에서는 산문어귀에 수령 2, 3백년은 돼 보이는 고목 한 그루가 있어 새로 돋은 가지에 하얗게 꽃이 핀 것을 황홀하게 쳐다보고 있노라니 지나가던 마을노인이 『몇10년 만에 핀 꽃이라우. 이 나무에 꽃이 피면 나라에 경사가 있대요』하고 일러 주었다. 그런지 반년만에 해방이 왔으니 미상불「경사」는 빈말이 아니었다.
천주사에 머무르는 동안 동대에 올라 굽이굽이 흐르는 구룡강 물줄기를 바라다보면서 소월의 서정시가 절로 입에 떠올랐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마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그 진달래는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였지만 여기 소월의 시비하나가 있었으면…, 비까지는 아니라도 하다 못해 어느 바위에『진달래꽃』한 귀절이라도 새겨두었으면…. 내 주머니에는 일본으로 갈 왕복차표 반쪽이 남아있다. 만주에서 받아온 책 두어권의 인세도 있다(전시하의「펄프」사정으로 궁산방이며 삼성당 같은 일본의 이름 있는 출판사들이 두명을 바꾸어 당시의「신경」에서 책을 찍었다. 내가 받은 인세는 반액 가까이를 국채와 교환해야했지만 시비하나 세울만한 여력은 있었다.
현해탄을 이번에 건너가면 언제 다시 고국을 보게될 것인지 기약할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 조국과 작별하는 마지막 길이 될지도 모른다. 소월 시비는 내 손으로 일역한『조선시집』두권의 인세를 조선시단에 도로 풀린다는 뜻에서도 알맞은 착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비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동경서 온 색다른 객이라고 천주사까지 형사들이 찾아오는 터인데, 그런 일을 했다가는 무슨 트집을 잡힐지 모른다는 천왕사 왕지의 만류였다.
『조금만 기다리면 좋은 때가 옵니다….』
그때 주지가 한 그 말-, 불제자치고는 전국을 투시하는 선견지명도 있었던 셈이다(그러나 약산에 못 세운 시비가 후일 대구달성공원에 새운 상화 시비의 포석이 되었다).
영변을 떠나 서울서 4, 5일을 지체한 뒤 나는 다시 호남선을 탔다. 충남서천에 사시는 어머님을 뵈러 군산으로 가던 길이다(군산서 도선으로 금강을 건너면 서천이다). 며칠전 약산 천주사로 보내온 백관음의「구사노 쇼오애쯔」(초야창열)이 편지에는 3월9일의 대공번으로 동경천지가 불바다로 화한 처절한 광경이 그려져 있었다. 그 공??은 앞으로 날이 갈수록 더 치열해간다고 보아야 한다.
동경으로 가기전 어머님을 안 뵙고 갈 수는 없다. 그 호남선 거중에서 겪은 잊혀지지 않는「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내딴에는 잘했다고 한 노릇이건만 젊은 시절을 돌이켜 볼 때 마다 내자신이 역겨워지는 풋내 나는 객기의 한 장면이다.
거기가 어디쯤일까? 2등차간에는 그래도 자리가 있어서 서서 가는 사람은 없었다. 승객의 반수이상이 군복차림의 장교들인 것도 시대색을 그대로 반영한 풍경이었다.
내 앞자리에 55, 56세 가량 돼 보이는 일본여인네 하나가 앉아있다. 무슨 이삿짐인지 재재부리한 보따리며 그릇 같은 짐 뭉치가 여남은 개는 된다. 선반에 울린 짐도 있고 그냥 자리 밑에다 재 둔 것도 있다. 앞에 앉은 나도 발을 움직이기가 거북할 지경으로 빽빽하다.
둘이 앉을 좌석에 옷차림이 미끈한 그 일본여인이 혼자 앉아있었는데 어느 정거장에 선가 한복을 입은 중년 부인네 하나가차간에 올라 그 일본여자 곁에 자리를 잡았다. 군복 투성인데다 거의 일본인뿐인 차간에 그 부인네의 품위 있는 옷맵시가 이체를 띠었다. 나이는 50전후-, 학식도 교양도 있어 보이는 그런 인품이다.
통로쪽 자리에 앉을 때 한복부인이『실례합니다』하고 나지막하게 인사를 했는데도 일본여자는 대답도 없었고 안으로다가 앉지도 않았다. 몸집이 큼직한 한복 부인네는 곁방에 세든 꼴수가 되어 겨우 허리만 걸친 불안정한 자세다. 2인석의 3분의 2는 일본여자, 3분의1이 한복 부인-, 좌석의 등 한가운데 뚜렷한 줄이 있어서 내쪽에서 보면 경계침범이 일목요연하다.
얼마 안가서 일본여인네의 중얼대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려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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