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거석문화는 남방에서 유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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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유대스코」한국위원회와 한양대학교가 공동주최 한「아시아」거석문화 비교연구「심포지엄」』이 25일부터 3일간 서울「프레지던트·호텔」회의실에서 한국·일본·「말레이지아」·인도·「인도네시아」5개국의 역사 및 고고학자 20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번「심포지엄」의 목적은 고인돌과 선돌등 선사시대 기념물의 종류와 분포·영조목적, 문화적·역사적 의미등을 나라별로 비교하며 연구자료를 상호교환하자는 것으로 국내 고교학계에서는 처음시도 한 국제규모다.
발표의 초점은 거적물의 종류·분포·존재기간·영조목적·영조시대의 사회 복원 등에 맞춰졌다.
발표내용을 종합해보면「아시아」지역거석물의 종류는 지석묘·석관묘·입석적석묘·석방·석의자·환상석렬 등으로 정리된다.
이가운데 석방과 석의자는「인도네시아」에서만 발굴된 거석물이다. 인니대표「수요노」 박사(인니 고고학 연구소장)에 의하면 석방의 크기는 4·5평 규모의 직사각형으로 두세개의 칸막이가 돼있다. 석방의 영조목적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선사 시대인이 이곳에 가축을 가둬 기른 것이 아닌가 보고있다.
또 이번에 보고된 거석물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은 환상석렬. 돌을 고리(환) 모양으로 에워쌓아 놓은 형태의 이 거석물은 한국과 인도에서만 발굴, 보고된 것으로 인도의「사카르」 박사(인도교육성 고고조사국장)는 이것을 옛사람의 회의장으로 추측했다.
우리나라 부여에서 환상석렬이 발굴됐다는 사실은 황룡혼교수(경희대박물관장)에 의해 이번「심포지엄」에서 처음 학계에 발표됐다.
「아시아」거석물의 형태는 북방식이라고 흔고 말하는 탁자식과 남방계의 기반식 변형지석묘들이 고루 보였다.
「아시아」지역거석은 인도의 동북부지방인「파키스탄」「발루치스담」등에 조금씩 분포되기 시작, 인도의 남동부지역과「말레이지아」의 남「페락」「말라카」「사라와크」지역, 「인도네시아」의「수마트라」「자바」「발리」「티모르」를 거쳐 일본의「규우수」지방, 한국등에 다량 분포돼 있는데 특히 한국과「인도네시아」는 거석의 ??고라는 것이다.
이번「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연구결과에서 일치된 사실은 동「아시아」거석문화의 형성 연대를 청동기시대로 확정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대부분의 나라가 영조목적을 분묘용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새롭게 제기된 문제는 거석이 영조되던 사회에 대한 복원의 시도로서 민속·수화를 고고학에 전용했다는 사실이다.
김병모박사(한양대)에 의해 제기된 이민속고고학적 연구시도는 새로운 측면의 고고학전개를 시발시킨 것으로 평가됐다.
김박사는 거석영조자들은 경제적으로는 주식인 쌀을 얻기 위해 경작활동에 종사했으며 신앙적으로는 난생신화를 믿고 제사형식으로 지석묘를 만들었다는 점을 중시했다.
김박사는 거석의 분포지역이 모두 남방 도작지역인 점과 거석분포지역에는 예의 없이 난생신화가 동시대적으로 발생, 보존돼 있다는 점으로 보아 적어도 우리나라의 거석문화는 남방유입이라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만주·길림등 북방에는 거석이 발굴되지 앉은 점으로 보아 언어 등에서는 한국문화의 북방유입설은 인정할 수 있으나 거석문화영역에서는 남방유입설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길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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