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관료주의자 계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구생략) 4인방에 의해 혹독한박해를 받고서 복권된 한 고위장성이 최근 유치원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수십만「달러」의 외화를 유용하여 최신실비의 사저를 지었다더군요 (전문) .
내가 무슨 말을 할수 있읍니까!/그리고/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당신은…/존경하는 선배!』(79년6월 중공의 시전문잡지 「시간」지 발표).
29세의 젊은 해방군병사 엽문복은 79년중순 「장군, 그렇게 해선 안됩니다!」 라는 제목의 장시를 발표했다.
30년대와 40년대의 초연이 자욱했던 전장에서 생사를 초탈했던 장군이 극좌파의 박해를 받고 숙청당했다가 복권된뒤 유치원을 허물어버리고 호화저택을 지은 부패행위와 권력남용에 대해 이 젊은 시인은 장군에게 『그렇게 해선 안된다』 고 나무랐다.
이 시가 발표되자 중공은 물론 해외에서도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우선「해방군」당국은 시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다그치면서 그를「해방군보」의 기자직에서 해임했다.
그는『시인이었더라면 신문을 거부했겠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한사람의 병사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문예지 「압록강」지 (중공요령성에서 발간) 에 실린 엽의 후일담에는 그 시에 나타난 내용과 같은 사례를 본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려편지가 홍수처럼 쏟아졌다고 전했다. 이 시의 주인공은 해군사령부의 정치위원(엽비로 추점) 이었다. 이 젊은 시인 병사는 79년4월 그의 비리를 듣고 『비통한 심정과 분노로 시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시간」이나 「압록강」지의 이같은 과감한 편집장의 개방정책은 등소평의 실권파가 들어선 이래의 실용주의정책의 한 과실이긴 하지만 이를 통해 외부세계는 중공의 모순과 관료들의 부패한 뒷면을 비로소 접할 수 있게됐다.
전해방군 참모총장 서리이며 현재 부건군구사령관인 양성무나 전무한군구사령관이며 현재 철도병사령관인 진재도등 많은 고위장성들이 특권을 남용하여 비슷한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당주석 화국봉은 80년9월 수상직을 물러나면서 마지막으로 행한 정부보고의 거의 5분의1을 할애하여 관료주의의 창궐과 특권남용을 경고했다.
79년2월 북경장안가서단의「민주의벽」-. 『왕부주석에게 구혼한다』는 한장의 대자보가 붙었다. 혼담이 무르익어 가다가도 신방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깨어지자 아예 신방을 배경받을때까지 혼인문제를 포기했다고 밝힌 30대초반의 노동자 광곤은 당시 서슬퍼렇던 당부주석 왕동흥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나는 신언서판을 갖춘 30여세의 노동자로 혼인하고 싶다. 19세의 어여쁜 처녀가 공원에서 나와 백년해로의 언약을 굳게 했건만 우리 집을 한번 와보고는 그 언약을 깨버렸다. 3대에 걸친 8식구가 사방9자의 한방에 3층 침대로 포개어 잠자는 현실 때문이었다. 또다른 처녀가 우리집을 한번 방문했다가 앉을 자리조차 없자 그대로 뛰쳐 나갔다.
왕부주석! 당신은 나의 아픈 마음을 짐작이라도 하겠느냐. 노인도 올고 나도 흐느꼈다.』
이 노동자는 왕이 중남해의 유서깊은 고가를 허물고 거금 6백90만원(미화4백50만「달러」)의 공금을 유용하여 촌호화판 장원을 짓고 또 그 딸에게 5간짜리 고급주택을 지어 선물한 것을 빗대어 왕에게 그의 딸 안군과 짝지워 달라고 했다.
『당신의 영애를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그녀에게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은 영애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비록 영애의 얼굴이 얽었을지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터이니 가연을 맺도록 당신이 주선하라』
이 대자보의 옆에는 『광곤 당신이 먼저 구혼했지만 나도(왕안군을 놓고) 당신과 구혼을 다투고싶다』 는 독자들의 부기가 새까맣게 이어졌다.
왕동흥이 남용한 6백90만원은 1천호의 노동자주택을 해결할 수 있는 액수였다. 1평방m당 건축비 1천원은 북경의 유명한「인민대회당」의 건축단가보다 3백원이 비싼 것이었다.
인민일보는 『공금을 도용하여 개인의 뱃속만 살찌게 했다』 고 이사건을 비판했으며 부수상 요의림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이 사건을 보고했다. 물론 광곤의 대자보는 실권파들이 문혁잔당인 왕을 권좌에서 밀어내기 위한 술책으로 이용한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상업부장관 왕뇌의 이른바「패왕찬사건」(왕후장상과 같은 요리상사건)을 보면 중공에도 어느면에선 자기계층의 권익을 서로가 보호하려는 이익사회의 현상이 정착하고 있다고「홍콩」의「쟁오」지는 논평한다. 왕은 장관이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유명한 식당을 돌며 호화판연회를 공짜로 즐겼다. 풍택원식당주방장 진애무가 용감하게 이를 문제삼자 한 부수상은 기자들에게 『왕은홀륭한 동지다. 나도 왕처럼 공짜로 음식을 먹었다』고 왕릏 비호했다. 최근 북경대학생들은 모택동이 관료주의의 형태를 20가지로 분류하면서 『고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 애쓰고있다』고 경고한 반관료주의 투쟁을 지지했다.
중공당 이론지 「홍기」는 중공에서「관료주의자계급」 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가면서 전국에 걸쳐 뿌리박고있는 관료주의의 해독을 경고하고 있다. <이수근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