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자왕손선」과 외국여행열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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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9년5월 상해의 황포부두―.수많은 환송인파의 배웅을 받으며 중공여객선 「명화호」는 일본을 향해 황해로 미끄러져 나갔다. 멀어져 아물거리는 여객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환송인파들은 「공자왕손선」(귀족선이라는뜻)이라는 새이름을 이배에 붙였다. 반쯤은 비양거림이며 반쯤은 부러움이 섞인 그런 표현이다.
이른바 「중일우호선사건」이다. 중일우호협회회장 요승지(전국인민대표대회부주석)를 단장, 국방차관 속유를 수석고문으로 한 중공의 각계각층대표 6백여명이 일본과의 친선을 돈독히 한다는 구실로 「명화선」으로 일본을 향해 떠났다. 6백여명중 각계대표는 2백여명에 지나지않았고 나머지 4백여명은 각대표들의 부인, 자녀, 그리고 고관들의 친지들이었다. 단장인 요만해도 30여명의 그와같은 권속을 「휴대」 (상해의 한 대우보의 표현)했다.
대표단원들이 일본에서 벌인 추태는 볼만했다. 전국 부인연합회의 부서기와 하남성부녀대표는 중공에서 수출된 식품인 작춘권(군만두)을 보고 『이식품은 매우 좋다. 우리들은 그제조방법을 배워가서 보급하는 것이좋겠다』고 했다. 「텔리비전」으로 이들의 얘기를 들은 인본인들은 배꼽을 쥐고 웃었다. 다른 한 여배우는 향수를 선물받고는『너무 너무 좋다』고 감탄했다. 중공이 문호를 개방한뒤 겪는 심각한 부작용의 하나는 저마다 외국을 나가려는 열병이다. 무역관리·외교관·문화사절·체육인·유학생등 외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은 외국여행을 할수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선택된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중 방문목적이 불투명한 관료나 고관들의 가족들이 적지않다고 상해의 한대우보는 지적했다.
이 대우보는 따라서▲국가재정이 낭비되고▲중공의 위신을 떨어뜨리며▲당과 군중간의 관계를 악화시켜 백가지 해만 끼치고 한가지 이익도 없는 나쁜 풍조라고 이를 비판했다.
이 대우보는 그와같은 빗나간 행위를 하고있는 고관을 본보기로 지목해서 꼬집었다. 그장본인은 당정치국원에 부수상이며 군사위비서장인 경표(경표) . .
그의 딸 염(30대초)은 갱년2월당시 부수상이던 등소평의 미국방문때 수행원이었다.
등을 수행중인 부수상 방의(당정치국원)의 처 은삼의 개인비서라는 신분이었다. 중공같은 나라에서 개인비서라는 직책도 어울리지 않거니와 개인비서가 된 배경을 보면 더욱 걸작이다. 염은 방의의 며느리니까 시어머니의 수행비서였던 셈이다.
그녀는 학교다닐때는 뒷문으로 북경대에 입학했고 졸업후에는 남들은 한번쯤 배치받기도 별따기처럼 어려운 북경의 직장을 두번씩이나 바꾸었다. 처음에는 북경「텔리비전」방송국(직종미상)이었고 다음은 아버지가 관할하는 외문출판사의 번역일을 맡았다. 그것도 마음에 안찬 그녀는 「파키스탄」의 중공대사관에서 1년간 근무한뒤 신화사통신에 들어갔다.
79년5월에는 아버지가 북구4개국의 방문을 앞두고 취재기자로 염을 지명했다. 신화사통신기자들이 들고 일어나 이 계획은 좌절됐지만 염은 현재 신화사통신「홍콩」지사의 대외연락관계일을 보고 있다. 경표가 지난해 9월 부수상겸 국방장관인 서향전의후임으로 등소평에 의해 국방장관직에 강력히 천거를 받고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선출되지 못한 중요한 이유가 그의 이같은 특권작풍에 있었다고 「홍콩」의 좌파소식통들은 보고있다.
요직의 관리들믄 출국을 낙으르 삼고 기회를 잡기에 안간힘이다. 역시 79년초의 일이다. 중공전국의 도시계획전문가들이 미국을 방문했는데 그중 도시계획전문가는 한명도 없었고 도시계획과는 무관한 당정관료들뿐이었다.
「칠십년대」지는 가장 옷기는 사건으로 소위「임칙서영화사건」을 들었다. 미국은 중공영화 「임칙서」(청나라관리로 아편전쟁의 중국측 영웅)를 수입하여 개봉하면서 중공영화계대표단을 미국에 초청했다. 국무원 문화부의 고위관리들이 서로 가겠다고 다루다가 대표단구성이 늦어지자 미국측은 중공당국이 초청을 거절한 줄 알고 계획자체를 취소해버렸다. 이 사실을 통고받은 문화부관계자들은 서로가 겸연쩍어 말도 못했다고 한다.
유학생의 경우도 예의가 아니다.
등소평의 막내아들 질방은 미 「로치스터」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있으며 1월말 해임된 문화부장관 황진의 아들이 외국에 유학하는등 중공의 해외유학생중 절대다수가 고위간부들의 자녀들이다.
「홍콩」의 중공당기관지나 다름없는「대공보」가 논설에서 중공고관들의 무분별한 출국열은 후진사회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아넘기기에는 너무 지나치다고 지적할 정도이다.
「칠십년대」지는 중공의 각급요원에 보편화된 출국열풍의 와중에서 중앙위원이상의 요원(약3백명)가운데 진운(당부주석)과 등영초(주은래전수상의 미망인·당정치국원)만이『진흙투성이에 나가 진흙을 묻히지 않은 두사람의 원로혁명인사』라고 평가했다. <이수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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