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카네이션」송이송이 봄을 가꾼다-경남 김해군 대동면「꽃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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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꽃술을 보이기가 차마 부끄러운 듯 꽃망울은 자꾸만 앞섶을 여민다. 시집갈 날을 기다리는 겨울 신부처럼 하얀 면사포를 쓴 「카네이션」봉오리가 망울망울 봄을 기다린다.
5만평 김해 벌에 연분홍 꿈을 키우는 경남 김해군 대동면 「카네이션」마을-.
낙동강 하구 부산시 귀포동에서 시외「버스」로 20분. 비옥한 광야가 눈앞에 펼쳐지면 1백여개의 크고 작은「비닐」온상이 물결을 이룬다. 창원의 국화, 부산의 백합과 함께 전국 3개 꽃 단지 중 최대규모의 「카네이션」단지. 1천만 송이의 「카네이션」이 손짓해 부른다.
이 마을의 꽃 재배 가구는 56가구에 3백여명. 부산시 모나동·사상둥지에서 꽃 재배를 하다가 4년전 공업단지가 되면서 공해를 피해 이곳으로 옮겨온 꽃 이민들이다.
대동면 은 토질이 비옥하고 배수가 잘된다. 낙동강 젖줄로 물 사정도 좋다. 뿐만 아니라 김해공항과 귀포역이 가까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이러한 조건들이 두루 갖춰져 지금의 「카네이션」마을이 되었다.
꽃마을에서 나가는 「카네이션」은 「로라」(분홍색) 「라레브」(짙은 분홍) 「로즈」(붉은 색) 「스키니아」(짙은 붉은 색) 「화이트」(흰색) 등으로 「로라」가 대종.
하루평균 5천 다발씩 한다발에 20송이를 묶어 10만 송이가 서울·부산·대구등 대도시로 나간다. 한 다발의 출하가격이 8백원으로 한달 이면 1억2천만원 어치가 된다.
서울이 주소비지로 전체의 70%가 김해공항에서 비행기편으로 수송된다. 꽃잎이 벌어지지 않고 구슬처럼 단단한 봉오리를 잘라 매끔하게 다듬은 뒤 20송이씩 묶어 「셀로판」지와 흰 종이를 씌운다. 영락없는 면사포 쓴 신부다. 「카네이션」키우기가 이제 겨우 1년이라는 강기현씨(37)는 『꽃송이를 다발로 묶을 때 꼭 딸 시집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라면서 『좋은 신랑 만나 잘 살도록 시집 전 뒷바라지 정성이 여간 아니다』라고 한다.
하오 4시 몸단장이 끝난 「카네이션」은 바로 비행기에 실려 그날 하오 9시면 서울 남대문 대도 꽃시장에 도착, 새살림 차릴 곳을 기다린다.
석죽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인 「카네이션」은 남「유럽」이 원산. 이곳 단지의 종묘는 대부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수입한다. 이른바 보세가공업.
꽃송이가 크고 색이 빛나고 아름다운 특색이 있지만 3∼4대가 지나면 질이 급격히 떨어져 다시 심을 수가 없다.
모판에 심은 어린 종묘는 3개월이면 「비닐·하우스」밭으로 옮겨 심고 실내온도는 항상 섭씨 15도를 유지해야 한다. 진드기를 없애고 마른 잎을 떼어주면서 6개월간 정성을 쏟으면 앙증맞은 봉오리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이때가 상품.
어느 「비닐」온상이건 「카네이션」이 활짝 피어 화려한 꽃밭을 이루면 그만 망한 농사가 되어 버린다. 온상에서 만가한 꽃은 각 가정에 도착하기 전에 시들어 도매상들에게 선도 보이기전에 딱지다.
『느그집 가시나들 바람났나?』
『아이고 지랄. 느그 딸네미나 간수 잘 하거라이.』
꽃 단지 마을 주민들에겐 출하 전에 피어버린 꽃을 딸자식 간수에 비유, 곧잘 이런 농담이 오간다.
「비닐」온상의 크기는 최고 1천5백평에서 작은 것은 5백평. 1천5백평짜리는 길이 60m에 밭이랑이 35줄, 기둥만 2천여 개 들어간다. 1천평짜리의 겨울철 난방용 기름만 하루 2「드럼」(7만8천원).
온상 1평에서 나오는 꽃값이 3만원으로 임대료·시설비 종묘 값·기름 값·살충제 값 등 2만5천원을 빼면 1년의 순 수입은 5천원이란다. 따라서 1천평짜리 온상을 경작하는 사람은 연간 5백만원 정도의 순 수입을 올린다.
꽃시장도 불황을 맞았다. 금년 초 불경기에다 전국을. 덮친 폭설로 꽃을 찾는 손님이 줄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가정의례 준칙이 강력히 시행되자 꽃가게가 속속 문을 닫았다. 따라서 재고는 자꾸만 쌓여 갔다.
꽃마을 주민들은 서울로 울라가 1만5천 송이의 「카네이션」재고를 모두 불살라버렸다. 썩고 병들고 시들어 추해진 꽃송이들은 대동면 「카네이션」의 싱싱하고 청결한 아름다움을 욕되게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우리 모두 펑펑 울면서 죽였읍니다. 시집가서 못사는 딸년 홧김에 패는 기분이었지요.』 서복점씨(40)는 손이 떨리고 가슴이 메어졌다고 한다.
「효도와 사랑」이 꽃말. 서재 가장자리 고즈너기 고개를 들고있는 한송이의 꽃이 어떻게 자라 어떻게 내 옆에 와 있는가를 반추할 수 있는 사람에게 꽃은 하나의 만남으로써 사랑을 얘기한다.
아직도 어린 온상 속의 「카네이션」은 다가오는 어버이날 효도와 사람의 「메신저」로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김해=진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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