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민섭의 도약 … 인천 하늘이 낮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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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무게 2.5㎏ 길이 5m의 장대를 이용해 5~6m를 훌쩍 뛰어넘는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흔히 ‘인간새’로 불린다. 다음달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인간새가 사상 최초로 아시아 정상을 노린다. 남자 장대높이뛰기 대표 진민섭(22·인천시청·사진)은 한국 육상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다. 육상 대표팀 총감독을 맡은 김복주(54) 육상연맹 기술위원장은 “진민섭은 아시안게임뿐 아니라 내년 이후 한국 육상을 대표할 기대주”라고 말했다.

 진민섭은 2009년 7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세계청소년육상대회에서 5m15㎝를 넘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5월 대만오픈에서 5m64㎝로 개인 첫 한국 기록을 작성했고, 지난 5월 부산국제장대높이뛰기대회에서 5m65㎝로 기록을 1㎝ 높였다. 2~3층 건물 높이다.

 진민섭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 체육대회 계주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보여 육상을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육상팀 코치의 조언으로 멀리뛰기에서 장대높이뛰기로 주종목을 바꿨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1m49㎝의 작은 키도 문제였지만 바를 넘는 게 두려웠다. 진민섭은 “장대를 땅바닥에 잘못 짚어서 도약에 실패한 적이 있다.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기절했다. 장대를 보면 겁이 나 두 달 정도 운동을 쉬었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무려 26㎝나 키가 크면서 심리적 공포도 떨쳐냈다. 이후 손목·허리·허벅지 뒷근육 등 부상에 자주 시달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바를 넘고 또 넘었다. 진민섭은 “장대를 짚고 바를 넘는 그 순간, 나만 느낄 수 있는 전율이 있다.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이 짜릿함 때문에 장대높이뛰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젠 전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진민섭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부담없이 뛰다보니 1위에 올라있더라”고 했다.

 육상연맹은 진민섭의 가능성을 보고 2010년 우크라이나 출신 시크비라 아르카디(54) 코치를 영입했다. 세계기록을 35차례 경신했던 장대높이뛰기의 전설 세르게이 부브카(51·우크라이나)를 가르쳤던 코치다. 진민섭은 “자세를 교정하면서 기록도 향상됐다. 2011~12년 슬럼프에 빠져 힘들 때마다 아르카디 코치님이 내 마음을 강하게 잡아줬다”고 말했다.

 진민섭은 중국·일본 선수와 금메달을 다툴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서 5m60㎝를 넘어 우승했던 중국의 쉬에 창루이(23)가 올 시즌 5m80㎝를 뛰어 가장 기록이 좋고, 일본의 베테랑 사와노 다이치(34)가 5m70㎝로 뒤를 이었다.

 진민섭은 이들에게 뒤지지만 육상 대표팀은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정범철 장대높이뛰기 대표팀 코치는 “4년 전 아시안게임 금메달 기록이 5m50㎝밖에 안 됐다. 개인 기록보다는 경기 당일 컨디션에 따라 결과가 갈릴 것이다”면서 “민섭이가 도움닫기부터 도약까지 기술이 좋아져 평균 기록이 향상되고 있다. 1차 시기에 (한국 최고 기록인) 5m70㎝을 뛴다는 전략으로 컨디션 관리를 하겠다”고 말했다.

 어린 애들은 한 번쯤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 진민섭은 “어렸을 때 꿈에서조차 날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장대를 이용해 진짜 날고싶어 한다.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장대높이뛰기 선수로 키울 것”이라는 진민섭은 “한국의 인간새가 아시안게임에서 얼마나 멋지게 도약하는지 봐 달라”고 당차게 말했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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