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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정책 독단보다 중지모아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올해 입시는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을 완전히 무시한 채 예비고사점수에 매인 점장이 눈치작전의 경쟁이었다. 10여만 원을 없앨 셈치고 10여 군데 대학에 원서를 복수 지원한 예시성적 2백40점의 학생, 고득점인 2백40점을 넘는 학생 할 것 없이26일 면접일 아침엔 모두가 갈팡질팡 이었다.
노름꾼의 투기 같은 이번 입학시험은 학생들에게는 물론, 학부형이나 일선교사들까지도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서로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이른바 「눈치학」을 터득해야만 했다.
한 학생이 최소한 3∼4개, 심지어 10여 개의 원서를 접수시켜야했던 턱없는 경제적 부담,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타난 이른바 명문대의 대량 미달 사태를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학이라는 곳은 자신의 인생방향이 결정지어지는 장소인 만큼 자신의 주체적인 의지와 결단으로 학과를 선택해야 함은 재론의 여지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의 대학입시는 그러한 기존의 상식적인 학과선택의 관념이나 풍토와는 전혀 동떨어진 것으로, 이는 너무도 일관성 없는 문교정책의 혼란과 정책당국자의 무정견과 졸속 행정에 그 전적인 책임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1백년은 고사하고 10년, 아니 1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의 문교정책으로 도대체 언제까지 수험생은 물론 수험생을 둔 우리부모들은 마음을 졸여야한단 말인가.
지난 25일 예비 소집 날 딸아이는 M학원을 선전하는 광고문을 하나 쥐고 들어왔다. 재수생의 대학진학을 위한 학원이 아니라 『1학기 중간고사에 대비하자』라는 문귀로 「버스」 노선까지도 친절하게 안내한 이「E대생 전용학원」광고를 보고 나는 그 동안 우려하던「대학생과외」가 드디어 현실로 나타나는구나 하는 느낌에 눈앞이 아득했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회풍토와 나날이 늘어가는 수험생-상대적으로 좁아지기만 하는 대학문- 이러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입학점원을 대폭 늘리고 졸업정원제를 택한 것임이 이번 입시정책의 골자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으로는 경원의 30%를 일률적으로 탈락시키는 졸업정원제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오히려 더 많을 것 같다.
최고의 점수여야 갈 수 있는 S대 법대의 탈락자 30%와 이른바 비명문의 3O%의 질적인 차이는 어떻게 메울 것이며 그로 인한 재수생은 더욱 늘어날 것이니 이는 또 어떤 정책으로 감당할 것인가. 외국의 경우와 같이 몇 년 동안의 유급기회를 주어 그 안에 졸업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교육하는 기관의 명분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실력과 자질보다 눈치와 베짱 만이 판을 쳤던 이번 입시의 혼란만큼이나 앞으로 닥쳐올 졸업 정원제 또한 극히 심각한 문제를 불러 올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입시제도가 바뀌면 과도기적 양상으로 여러 문제가 파생 될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믿을 수 있는 문교정책」,즉 어떤 특정인의 업적을 위한 문교정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번 입시제도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요행심과 공포심을 조장하여 극도의 혼란을 가져왔고 이는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를 이탈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는 정책 당국자가 근본적으로 사전에 신중한 배려 없이 문제를 급히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고싶은 것은 앞으로 입시개혁은 즉흥적인 임기 응변 식으로 하지 말고 사전에 장기적인 입시제도 개혁백서 같은 것을 국민 앞에 제시, 국민각계각층으로부터 평범한 의견을 듣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다. 시행착오에 대한 문책의 표시로 책임자 한사람의 인사조사만 해버리면 할 일은 다 했다는 식의 당국의 태도는 너무나 안이하고 몰염치한 사고 방식인 것 같다. 그 시행착오로 피해를 본 학생들의 장래는 누구에게 하소연해야만 할 것인가.
부디 바라건대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독단이 아니라 중지를 모으는 문교정책수립, 졸속보다 신중을 앞세우는 정책시행이 있어야 할 것이며, 그러한 문교정책만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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