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우리는 형제들, 함께 갑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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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것은 길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다른 형제들과 함께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형제들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걸어갑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마지막 날, 첫 일정은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이었다. 18일 오전 9시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교황은 국내 12대 종단 지도자들과 만나 짧은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그들을 ‘형제’라 부르며 “서로 인정하자”고 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난한 자’ ‘젊은이’만큼 입에 많이 올리는 메시지는 ‘화해와 평화’다. 교황이 지난 5월 두 번째 해외 순방지로 중동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는 유대인의 성소인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를 하고선 유대교 랍비와 무슬림 지도자를 껴안았다. 당시 영국 가디언지는 “정치적 지뢰밭에서 길을 찾아나갔다”고 평가했다.

 교황이 이번에 한국을 찾아 전한 메시지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모두를 감싸 안았다. 12분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단 지도자들에게 일일이 손을 내밀었다. 자리에 앉지 않고 선 채로 미소를 머금고 눈을 맞추곤 말을 경청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대할 때 스님이 두 손을 모으고 불교식 합장을 하자 프란치스코 교황도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이따금 선물을 건네받을 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대한성공회 의장 김근상 주교가 흰 십자가를 선물하자 놀라는 표정으로 웃더니 십자가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교황은 모두를 마치 먼 데서 온 형제처럼 맞았다.

 인사를 마친 뒤 교황은 종단 지도자들 앞에서 짧게 연설했다. 조심스러운 듯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말을 이어갔다. ‘하느님’을 얘기할 때면 잠시 손을 풀어 하늘을 가리키기도 했다. 말을 마친 뒤 통역이 지도자들에게 이야기를 전할 땐, 고개를 살며시 숙인 채 기다렸다. 의미가 잘 닿기를 기도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기념촬영 뒤에도 교황은 바로 몸을 돌려 주위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교황의 말은 짧았지만 여운은 깊었다. 닷새간 낮은 곳을 향했던 교황의 행보가 겹쳐 보여서다. 참석한 종교 지도자들은 그의 말과 행동에서 우리 사회가 깨달음을 얻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자승 스님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되라는 말씀은 종교뿐 아니라 모든 지도자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고 했다. 원불교 교정원장 남궁성 교무는 “교황의 행보는 종교 지도자의 참모습을 보여줬다.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을 전한 교황께 종교인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반성도 이어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는 “모든 종교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동시에 협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이번 교황 방문에 배타적 입장을 취한 일부의 행동은 유감이며 시정할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정기 성균관장은 “교황의 서민적 몸가짐과 행동에 감탄했다”며 “종교가 기업화되는 행태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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