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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LG도 UL라벨 찍으려 공장 공개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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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황순하 사장

붉은 동그라미 속 반듯한 알파벳 UL. 미국인들에게 안전의 대명사로 통하는 UL 인증 라벨이다. 미국 최고 권위의 전자기기 인증기업인 UL이 자체 개발한 안전 규격을 통과한 제품에 이 라벨을 찍어준다. 미국에 수출하려면 사실상 이 라벨 없이는 힘들다. 삼성·LG전자가 만드는 휴대전화·TV·냉장고도 이 라벨을 받기 위해 UL에 공장을 공개하고, 검사를 받는다. 올해로 국내 법인 설립 18년째인 UL코리아의 황순하(53) 사장을 최근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황 사장은 “UL인증은 법적 강제사항이 아니지만, 소비자들이 UL 라벨을 원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UL이 1894년 창사 이래 120년 간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었던 힘도 여기에 있다.

 UL은 20만 개의 백열전구가 불을 밝혔던 1893년 미국 시카고세계박람회를 계기로 출발한 회사다. 에디슨이 개발한 백열전구는 밤을 낮처럼 밝혀주는 신기술의 힘을 보여줬지만, 과열로 인한 화재가 잦아 문제였다. 보험 회사 직원이던 UL 창업주 윌리엄 메릴은 박람회 전구 화재를 보며 ‘안전 인증’ 사업에 눈을 떴다. 보험사업자의 실험실(Underwriters Laboratories)이라는 회사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UL은 전자기기 안전인증 기관으로 출발해 현재는 스마트폰 같은 정보통신 기기, 의료기기, 신재생에너지 소재 기기, 자동차까지 인증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UL은 104개국 152개의 시험소에서 연평균 220억개의 제품에 UL 마크를 찍고 있다.

 UL이 민간회사이면서 공적기관처럼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뭘까. 황 사장은 “UL의 힘은 안전의 기준을 정하는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가령 냉장고 문의 개폐 인증 기준은 ‘어린 아이가 냉장고 안에 들어갔다가 문이 닫혔을 때 아이의 힘으로 밀고 나올 수 있는 정도’다. 이런 규격을 처음 만들어 보급한 게 바로 UL이다.

 물론 ‘안전’의 개념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황 사장은 “요즘은 안전의 패러다임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넘어가고 있다”며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의 안전성을 테스트하는 모바일 시험소가 이런 변화의 중심에 있다”고 소개했다. 휴대폰의 전자파뿐만 아니라, 모바일 결제 시스템의 보안성이 안전을 평가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황 사장은 “한국시장의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과 LG라는 두 개의 글로벌 휴대폰 제조사의 본사가 여기 있는 까닭이다. UL이 오는 11월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사업장 인근에 모바일 기기 시험소를 개설하는 것도 맥락이다. 그동안은 국내 제조사들이 미국·영국 등에 위치한 시험소까지 찾아가야 했다. 매년 두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UL코리아의 힘도 반영됐다.

 UL은 향후 자동차 인증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기아자동차 출신으로 대우차· GE를 거친 자동차 전문가인 황 사장이 UL의 글로벌 자동차 인증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황 사장은 “무인자동차의 소프트웨어가 고장나면 그 위험성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자동차도 이제 소프트웨어가 안전의 핵심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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