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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야당, 날개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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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

최근 세월호특별법 처리를 둘러싼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분란을 바라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자리 중 하나가 야당의 당 대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의 리더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권한이 부여돼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나마도 파리 목숨 같아 보인다. 전권을 부여받았다는 ‘비상대책위원회’의 대표가 여당 대표와 합의한 내용에 대해 야당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당내 의원들의 비판을 받고 재협상 자리로 끌려 나왔다. ‘전권’도 ‘비상대책’도 다 소용이 없었다.

 사실 2012년 총선부터만 살펴봐도 이 정당을 이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그해 초 당을 맡은 한명숙 대표는 5월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그 사이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 이후 이해찬 대표가 다시 당을 맡았지만 대선 기간 중인 11월에 물러났고 또다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갔다. 2013년 5월 김한길 대표가 당선되었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면서 이듬해 3월 안철수 의원과 공동대표 체제로 갔고, 이번에 또 물러났다. 1년8개월 사이에 네 차례 지도부 교체가 있었으니 평균 5개월 정도씩 재임한 셈이다. 여기에 비상대책위원장까지 포함하면 그 기간은 더 줄어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제대로 된 당의 리더십을 갖출 수도 없고, 국민에게 안정감이나 신뢰감을 줄 수도 없다. 심각한 점은 야당이 이런 모습을 보인 게 최근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시절에도 당 의장의 평균 재임 기간은 4개월 반 정도였다.

 당내 리더십이 약화되면서 당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사안마다 당내 강경파의 반발과 주장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듯 보인다. 새정치연합이 총선에서 이겨서 제1당이 된 것도 아니고 대선에서 이겨서 집권당이 된 것도 아닌데,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조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세월호 유족들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는 충정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이번의 당내 분란을 보면서 야당은 여전히 타협과 합의보다는 선명성과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하는 운동권적 습성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내 민주화도 좋고 의원 개인의 자율성 강화도 좋지만 정당이라는 조직이 리더의 권위에 대한 복종과 최소한의 기율도 없이 제대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새정치연합은 잘 보여주고 있다. 하다 못해 동네 야구 팀에서도 감독이 지시하면 홈런을 치고 싶어도 팀을 위해 그 선수는 희생번트를 대기 마련인데, 지금 야당의 모습은 왜 나에게 희생번트를 요구하느냐고 감독에게 사사건건 대드는 꼴이다. 모래알 같은 정당이다.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해서 과거 3김 시대와 같이 당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처럼 카리스마를 가진 강한 리더는 쉽게 나타나기도 어렵고 또 오늘날 바람직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리더를 선출했다면 적어도 그 임기 동안은 그 권위를 존중하며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야당이던 신민당도 계파 갈등은 심각했다. 그럼에도 이철승이든 김영삼이든 일단 선출된 당 리더의 리더십은 임기 동안 보장되었다.

 마침 영화 ‘명량’이 큰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12척의 배만이 남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적 대군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용기와 뛰어난 전략·전술이 커다란 감동을 준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전투 전날 불리해 보이는 상황에서 제 목숨 건지겠다고 병영에서 도주하던 병사가 잡히자 장군이 친히 그의 목을 쳤다는 사실이다. 군이든 정당이든 조직의 기율이 살아 있어야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새정치연합은 리더도 없고 기율도 없는 오합지졸의 모습이다.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여야 간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야당 내에서 일어난 분란의 후유증은 남을 것 같다. 여당의 양보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야당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감은 오히려 더 떨어진 것 같다. 2007년 이후의 모든 선거에서 야당은 승리하지 못했다. 세월호 사건 등으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실망이 컸던 상황에서도 야당은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했다. 더욱이 최근에는 지지율이 최저치에 도달했다. 그러나 사실 어디가 바닥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지난번 재·보궐선거 이후 보수 언론조차 야당 걱정을 해주고 있는 상황이지만 딱히 변화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정당에 집권을 기대할 수 있을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