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총리」 후임은 누구…|전경련, 2월 총회서 회장 선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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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제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는 전경연총회가 당초예정보다 10일쯤 앞당겨져 2월중순에 열릴 것 같다.
이번 총회에 유난히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정주영회장의 임기가 끝나 회장을 새로 뽑아야하기 때문이다.
전경련회장은 재계의「리더」로서 공사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재계총리」라 불리며 정치향방에도 큰힘을 미치는 일본의 경단련회장까지는 못가도 국내외적으로 경제계「얼굴」의 예우를 깍듯이 받는다. 앞으로 민간주도경제체제로 가면 비중은 그만큼 높아진다.
따라서 전경연회장은 재력·신망·관록등을 두루 갖추지않으면 안된다.
나이도 고려해야 된다. 또 정부와의 관계나 재계내부의 조정역할도 중요하다.
전경련회장등 경제4단체장을 맡게되면 유형무형의 득도 많고 실도 있다.
우선 국제화시대를 맞아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일단 신임을 받을수 있어 자기사업에도 적잖은 도움이 된다.
또 사회경제협의회·외자도입심의회·세정협의회등 정부의 주요정책의 입안과정에 참여해 입김을 넣을 수도 있다.
정부의 고위당국자와 접촉할 기회도 많다.
그러나 공적「스케줄」에 쫓져 시간을 많이 뺏기고 또 제대로 일을하려면 1년에 억원대의 주머니돈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한다.
전경련은 61년8월 13명이 총회를 열고 「한국경제인협회」로 발촉했다. 지금은 창립20년만에 4백여개사에 이르는 대기업회원을 확보하고있는데 방계기업까지 치면 약3천5백개가 넘는 기업을 회원으로 확보하고있는 셈이다.
전경련의 초대회장은 삼성의 이병철회장이었고 그 뒤를 이정임(2, 3대· 대한선박), 김용완(4, 5, 9, 10, 11, 12代」 경방명예회장), 홍재선(6, 7, 8대·작고) 씨가 역임했다.
현정주영회장은 77년4월에 13대회장으로 취임, 한번 연임했으며 이번에 15대회장을 뽑는것이다. 임기는 2년이며 연임제한 규정같은 것은 없다.
전경련회장은 재계의 합의에 의해 투표없이 추대하는 것이 관례다.
물론 정부의 입김도 강하게 작용한다.
작년 10월 기협중앙회장을 선두로 각 경제단체장들이 임기를 채우지못하고 물러났으나 전경련회장은 바뀌지 않았다.
상의·무협·중심기협과는 달리 순수한 민간단체인「전경련의 자율」을 존중한다는 명분때문이다.
작년에 포항제철의 박태전사장이 새회장으로 취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포철에서 보여준 박사장의 추진력과 폭넓은 지면등이 새시대의 전경련회장으로는 적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박사장은 「오너」 경영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상당히 사양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대해 전경련은 입을 굳게 다물고있다. 전경련회장단·고문단 및 부회장단은 9일상오 「플라자·호텔」에 모여 후임회장선출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공식적인 거론으로서는 첫모임인 이 회합은 같은 「호텔」에서 있었던 전경련중진회의가끝난직후 정주영회장의 제의에 따라 마련됐다.
김용완명예회장·정주영회장·김용주경영자협회장(전방)·이원정고문(한국해광개발)·최태섭고문(한국유리)·원용석부회장(혜인중기)·조중훈고문(KAL)·조우동고문(삼성조선)·신덕균고문(동방유량)·구자경부회장 (럭키) 등이 참석한 이모임에서 정주영씨의 유임과 김용주씨(전방회장) 등의 이름이 거론됐으나 결론을 내리지못하고 회원들의 여론을 더 들은후에 결론짓기로했다.
김용주씨는 전방회장으로 주일공사·민주당원내총무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영자협회장을11년째 맡고있다. 나이는 77세.
재계일부에서는 현정주영회장을 재추대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회관건립에대한 공로와 현대의 막강한 재력때문이다.
그러나 정회장은 작년 10월 경제단체장 교체의 조짐이 있을때부터 『임기전에 물러날 생각도, 연임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해왔다.
정회장은 이런 공언외에도 『중동에 장기간 출장도 가야하는등 내사업(현대그룹)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에서 최태섭씨 추대론도 나오고있다. 최씨는 60년대부터회장으로 거론됐으며 한때 전경련회장으로 정식 추대를 받았지만 본인이 극구 사양한바있다.
최씨는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교회장로인데다 고향이 이북임을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회장선임은 철저한 화합의 결과로 탄생하는것이 전통이다.
77년4월. 김용완회장의 후임을 뽑을때의 일이다.
전경련 원로회원들은「타워·호텔」 19층에서 장시간 의견을 교환했으나 정주영씨와 김용주씨로 압축시켰을뿐 결론을 내지못했다.
원로들은 정·김 두사람을 옆방으로 안내, 단독협상을 벌이개하는 한편 의견조정을 계속했다.
30분쯤 지난뒤에 문을 열고나온 김씨는 『새회관을 짓기위해서 정씨에게 떠맡겼다』고 했다.
새회관을 짓기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필요한데 건립을 추진하는 회장이 재력이있어 선뜻 거금을 내놔야 다른 회원들의 협조를 받을수 있다는것.
또 당시 정부가 중화학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인데 정씨의 업종이 이에 합당, 내용을 잘아는 사람이 적격자라는 판단때문이었다고 김씨는 훗날 측근에게 말한것으로 전해졌다.
단독협상때 정씨가 『내가 회장이 되면 원로들이 협조를 하겠느냐?』며 사양했으나, 김씨는 『그점은 나를 포함한 중진들이 빠짐없이 참석해 울타리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회장이던 김용완씨는 이때 『김용주씨의 뜻에 따라 정주영씨를 지명』 했다.
김씨는 이 약속을 성실하게 지켰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번 선출에서 정씨는 김씨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있는지도 모른다.
한달남짓 남은 총회까지에 변수는 많다.<박병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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